나의 이야기

‘처진 눈’ 유전자/이정아

Joanne 1 2022. 1. 26. 04:47

[이 아침에]
‘처진 눈’유전자

[Los Angeles]중앙일보 미주판
입력 2022.01.24 18:12 수정 2022.01.24 19:12

우리집의 4남매는 모두 눈이 크고 처졌다. 부모님을 닮았을 것이다. DNA 유전자가 지나간 눈은 착해보이는 인상으로 젊을 땐 호감이었는데, 늙을수록 게슴츠레한 눈으로 변해 눈을 떠도 자는 듯 보인다. 이즈음 사진 속의 나는 거의 자고있다. 남편은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자, 눈을 크게 뜨시고, 눈에 힘 주시고 ~” 라고 주문한다. 우리집안 사람들에게 좋은 사진이란 나 같지 않게 예쁘게 나온 사진이 아니라, 눈을 떴느냐 아니냐가 좋은 사진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우리 형제들은 친가와 외가가 왕눈이어서 큰눈엔 별 매력을 못 느끼고 지루했는지, 배우자는 모두 작은 눈의 홑꺼풀을 골랐다. 세 며느리와 한 사위가 모두 쌍꺼풀이 없다. 무쌍의 가늘고 긴 눈을 가졌다. 내 결혼 할 땐 역시 큰 눈의 이모가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왜 저런 눈을 골랐니? 저런 눈은 눈값을 해서 성깔이 있는데”라고 속삭이기도 했다. 나는 느끼한 쌍꺼풀보다 성깔있는 외꺼풀 선호파이다.

이번에 한국에 가니 세 남동생중 가장 보수적인 둘째가 눈 아래 위를 당기는 수술을 해서 놀랐다. 사연인즉 큰 아이를 결혼시키는데 딸들이 강력히 권해서 할 수 없이 했다고한다. 신부입장 할 때 아빠가 늙어보이는 게 싫다고 했다나 뭐라나. 이젠 자리가 잡혀 자연스럽다. 처진 눈은 나이들면서 피부와 함께 늘어지니 되도록 빨리 잡아줘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은 조언하신다.

우리 옆집의 잭 할아버지도 아침에 정원에서 만나면 두 손가락으로 눈거풀을 당기며 “굿 모닝 조앤~” 하시곤했다. 결국은 뒤늦게 수술을 하셨다. 나도 교우들이나 친지들을 만나면 처진 눈에 대한 조언을 수도 없이 들은 터였다. 자기눈은 안 보이니 애꿎은 내눈에 지나친 걱정을 퍼붓곤했다. 딸이 안과의사인 권사님은 자신의 눈을 보여주며 딸의 솜씨라고 은근 부추기고, 메디케어를 타게 되었으니 제발 눈을 땡겨 보라며 격려를 해 준 분도 있다.

한국에서 대사관 서류처리로 어쩔 수 없이 한 달을 대기하게 되자, 둘째 올케가 나서서 내 눈의 안검수술이 성사되었다. 심청이가 심봉사 돌보듯 팔장을 끼고 병원출입을 지극 정성으로 도운 탓에 졸린 눈이 개안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동생을 보고 용기를 내긴 했는데 처음 2주간은 후회막급이었다. 너구리 같기도 닌자터틀 같기도 한 충혈된 눈이 꿈에 보일까 무서울 정도였으니.

부랴부랴 썬글래스를 맞춰 집안에서도 끼고있는 진풍경을 연출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왔다. 아직 자리잡히지 않은채로 교회에 갔더니 수술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교회가 분열될 지경이 되었다.

겁많은 내가 ‘안검수술’을 했더니 남은 두 남동생들도 처진 눈 수술을 할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개안했으니 새해엔 좋은 것만 보면서 살고 싶다.

이정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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