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금귤이 만든 인심

Joanne 1 2024. 2. 16. 14:32

[이 아침에] 터줏대감

[Los Angeles]중앙일보 미주판
입력 2024.02.15 18:52 수정 2024.02.15 19:52


속담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웃에 있는 사람이 멀리 있는 친척이나 친구보다 더욱 가깝다는 의미인데 요즈음엔 이 말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이웃이 더 이상 이웃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국 뉴스를 보면 이웃끼리 층간소음이니 주차문제로 서로 다투고 소송을 하기도 한다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한 시대를 사는 중이다.

우리 집엔 금귤나무가 12그루가 있다. 흔히 낑깡이라 부르기도 하고  영어로는 Kumquat(쿰콰트)라고 한다. 껍질째로 먹는 새콤 달콤한 과일로 특히 비타민 C가 많고 칼슘도 많다. 쿰콰트를 뒷마당에 여섯 나무를 심고 차고 옆 울타리에 여섯 주를 심었다.  올해 낑깡이 풍작이라 울타리에 심은 것은 노란 전구가 무수히 달린 듯 상큼하고 보기에 좋다. 오며 가며 산책길의 사람들이 신기해하기도 하고 따먹기도 하니 동네 간식인 셈이다.

시큼해서 나는 잘 먹지 않아도 종종 신 것을 좋아하거나 감기 걸린 이에게 따서 주면 반가워한다. 지난주 예배시간에 메시지가 왔다. 앞집의 Paul이 잼을 만드는 중인데 제스트(zest)가 필요해서 우리 울타리의 낑깡을 조금 따고 싶다고 한다. 제스트는 감귤류 껍질에 있는 펙틴인데 잼을 끈기 있게 하려면 껍질을 갈아 넣으면 유용하다. 아무 때나 필요한 만큼 따서 쓰라고 답장했다.

며칠간 계속된 비에 금귤이 많이 떨어졌기에 남은 걸 따려고 나가니 다른 앞집인 미오 할머니 손녀가 일부러 알려준다. 며칠 전에 어떤 이가 자루를 들고 와 따기에 다른 사람들 위해 남겨두라고 말했단다. 자기 집 2층 창밖으로 우리 울타리가 잘 보여 본의 아닌 보초를 선 모양이다. 나눠먹는 이웃이 나무를 지켜주는 이웃이기도 해서 고마웠다.

낑깡을 따서 향긋한 술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기도 하고, 금귤청을 만들어 나누기도 하니 조그만 귤이 이웃 사이를 정답게 한다.

‘隔墻之隣 격장지린’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담을 사이에 둔 이웃이라는 뜻으로, 아주 가까운 이웃의 의미 곧 이웃사촌과 같은 뜻이다. 혹여 담이 증오나 미움의 담이 아니길 바란다. 사랑의 담이어서 그 담으로 별식도 넘나들고 도움도 나누는 담이었으면 좋겠다.

오래전 이 동네에 집을 사고 부모님께 알렸더니 아버지가 편지하셨다. “미국에서 첫 집을 사다니 기쁘다. 네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라.” 바로 그 집에서 37년째 살고 있다. 가장 젊은 주민이었는데 이젠 어른들은 다 돌아가시고 세대교체가 되면서 우리 집이 절로 동네 터줏대감이 되었다.

이왕에 터줏대감이 되었으니 이웃의 범위도 확장하여 앞 세집 두 옆집과만 교제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남은 여생을 푸근한 터줏대감으로 살고 싶다.

이정아 / 수필가

# 이 아침에 # 터줏대감 # 동네 터줏대감 # 이웃 사이 # 금귤나무 12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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