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 보다 더 달콤한 인연
이정아
예배중에 카톡이 왔다. "식혜 한 병 냉장고에 넣어두었으니 가져가세요." 솜씨 좋은 분이긴 한데 별로친하지도 않은 나를 위해 식혜를? 궁금했다. 예배후 친교실로 가니 여기저기서 식혜를 찾는다. 식혜를 만드신 분은 J 권사님께 드리려 포장 겉에 이름까지 써 넣고는 실수로 단체 카톡방 24명에게 문자를 날리신거다.
고맙다고 미리 인사를 한 사람부터 자기식혜를 찾는 이들로 친교실이 소란했다. 원래 드리려던 분이 결석을 해서 식혜는 우여곡절 끝에 내 차지가 되었다. 손가락의 실수로 얻은 어부지리. 내 것이 아닌 걸 획득한 기쁨보단 민망했다. 마침 뒷마당에서 수확한 귤을 가져갔기에 나누어 드렸다. " 이러면서 친해지는거죠." 함께 웃으며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살다보면 뜻밖의 해프닝을 만난다. 식혜사건처럼 달콤한 사건이 있는가하면, 인연이라 할 수 있는 조금 더 진중하고 신이 함께 한 것 같은 일 말이다.
스노우보드 마니아인 아들아이는 맘모스스키장에서 알바를 했었다. 근무시간외엔 스키장을 무료로 사용 할 수 있어서 스노우보드를 실컷 탈 수 있다나? 2010년 그 맘모스 스키장에 훈련왔던 10살의 스노우보드 선수 클로이 킴을 만났고, 클로이 아빠와 코치와 함께 밥을 먹은 인연이 있다.
그 뒤론 열심히 클로이를 응원하더니 이번 평창올림픽에 미국가대표로 출전한다며 팬으로 따라나갔다. 금메달리스트 뒤엔 이런 극성팬들의 성원도 있다. 아들아이의 여자 친구도 어느새 클로이 킴의 팬이 되어서 한국에 같이 나간다고 했다.
우리세대와는 달리 응원도 적극적이다. 먼발치서 수줍게 응원하고 싸인 한장 받는것도 부끄럽던 세대인 나는 놀라울 뿐이다.
마침 올림픽과 한국의 설이 겹쳐서, 간 김에 한국에 계신 여자친구 부모님께 가서 세배도 드리고 결혼 승락도 받아 오라고 미션을 주었다. 말 수가 적은 아들아이는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가기 전부터 행복한 고심을 했다. 인륜지대사가 쉬운 줄 알았더냐?
평창올림픽도 보고 흔쾌히 결혼승락도 받아온 아이는 한 시름 놓은 듯 홀가분해 보인다. 미래의 사돈댁에서 받아온 선물 꾸러미를 내 놓는다. 선물 꾸러미안에 수필집도 들어있어서 의아했다. 속지에 "ㅇㅇ할머니 입니다. 책으로 첫 인사 드립니다." 써 있었다. 세상에 며느리감의 할머니가 한국의 수필가 K선생님 이셨다. 내 여고와 대학의 대 선배님이시기도 해서 반갑고 신기했다. 선배님 덕에 아들아이가 더 쉽게 허락받은게 아닐까.
식혜보다 더 달콤한 연분이 펼쳐질 모양이다. 수필이 맺어준 것 같아 내가 두근두근 설렌다. 많은 시간을 글에 투자 했더니 이런 상급도있네. 문학에 감사하고픈 날이다.
격월간 그린에세이 2018년 3,4 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