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놀이, 아들의 작은결혼식
이정아
아들이 연애끝에 드디어 결혼날짜를 잡았다. 참하고 예쁜 새아기가 맘에 들었다. 알고보니 새아기의 할머니가 내 모교 (여고와 대학까지) 대선배 이신데다, 수필가이시니 결혼당사자뿐 아니라 사돈어르신과도 큰 인연이 아닐수 없다.
양가가 흔쾌히 허락하고 결혼예식을 준비하는데,아들아이가 보여준 결혼식 견적서는 $37,500의 내역이 쓰여있었다. 장소 임대비,식사비용, 사진및 비디오 촬영이 각 1만불씩 으로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타 꽃장식, 화장, 케이크, 발렛파킹비용이 든다는 거였다. 이곳은 남녀절반씩 비용부담이 일반이다. 물론 프로포즈용 반지는 남자가 따로 마련해야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무척 싼 비용인데다 그것도 자신들이 번돈으로 충당한다니 부모는 구경만하면 되었다. 부모는 약간의 축하금을 보태었을뿐 혼주가 아닌 들러리역 이었다. 100명만 초대할 수 있는 작은 장소를 빌렸다며 양가 부모들은 20명의 손님을 초대하라고 주문한다. 신부쪽은 4명이 오신다고 나머지를 양보하셔서 16명의 손님을 우리부부가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내쪽으로는 글쓰는 선생님 한분만 초대했고, 시댁 식구들 4명 나머지는 교회 구역식구와 장로님 몇분만 초대할 수 있었다.
교회나 호텔에서의 그럴듯한 성대한 예식을 기대했으나, 요즘애들의 트렌드인 small wedding 을 택한 아들아이가 못마땅했다. 아는 사람을 초대 할 수 없는 결혼. 누군 초청하고 누군 안하자니 곤란해서 아예 광고를 안했다. 비밀결혼도 아닌데 쉬쉬하려니 답답했다. 좋은 일에 잔소리가 도움이 안되겠기에 참았다. 그저 무사히 마치기만 기도했다.
오후 4시에 시작하여 밤 12시에 끝난결혼식은 재미있는 이벤트였다. 남편의 재즈밴드도 한 순서를 담당했다. 식사전 칵테일 시간에 멋진연주를 해서 디너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심심치 않았다.
식사후는 친구들과의 한바탕 댄스가 밤 12시 까지 이어졌다. 부모세대가 낄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어른하객은 일찍 퇴장하고, 한국에서 온 시누이들은 미국의 특이한 결혼문화를 구경했다며 신기해한다. 겪어보니 작은웨딩이 초라한 결혼식이 아니라, 진짜 잘 아는 사람끼리 교감하는 소통을 중시하는 웨딩이었다. 젊은세대의 문화를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닌것 같다. 허례허식이 아닌, 합리적인 거품없는 결혼식이어서 마음이 흐뭇했다.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주는 편지를 읽을 때, 신부아버지와 신부가 입장할 때, 신부를 바라보던 엄마의 애잔한 눈을 보며 주책없이 눈물을 찍어냈다. 아직 나의 수도꼭지는 건재했다. 예식의 규모와 상관없이 결혼식엔 이런 파토스(pathos)가 존재한다. 동서고금을 넘어 영원히.
적적했던 집안에 꽃같은 며느리가 들어오니 화사해졌다. 한국에 사시는 사돈댁은 딸을 두고 가야해서 염려가 많으실 것이다. “ 사돈! 걱정 마세요. 잘 보살필게요. 내 결혼식에서 우셨던 친정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
주변 분들에게 결혼식 마친 후 성혼을 알렸다. 무슨 경우냐며 원성이 빗발쳤다. 새아기의 일생이 오는 어마어마하고 행복한 일이 우리가정에 있었다.
아무튼 큰 숙제 하나 끝낸기분. 만세!
그린에세이 2019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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