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내가 받은 두 가지 뇌물
이정아 / 수필가 | [LA중앙일보] 2021/08/11 미주판 20면ㅣ입력 2021/08/10 19:00
단골 반찬가게가 사업을 확장하여 식재료를 파는 마켓을 인수했다. 홈페이지를 업그레이드한다며 이미 고객인 사람도 다시 가입해 달라고 한다. 약간 귀찮아도 새 멤버로 가입을 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사업이 잘 된다는 말이니, 남의 일이어도 얼마나 좋은가?
오늘, 주문한 식품이 배달되었는데 봉투 안에 시키지도 않은 것이 들어있다. ‘뇌물‘이라고 당당하게 스티커까지 붙은 이것은 오돌오돌하게 무친 맛있는 오이지이다. “이거 받으면 우리 단골 되는 거다”하는 문구가 은근한 협박조다. 홈페이지로 인한 미안함을 귀여운 뇌물로 입막음 하려는게 아닌가? 뇌물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부정한, 웃음을 유발시킨 칭찬하고픈 뇌물이다.
우리 집과 가까이 살다가 조금 먼 곳으로 이사하셔서 통 뵐 수 없던 H여사가 방문을 하셨다. 인생의 일순위를 ‘맛있는 것 먹기’에 두신 미식가이시다. 산타바바라의 유명 스테이크 식당에 택시 타고 가서라도 드시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분. 바리바리 저장 식품을 싸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이선생, 이거 다 뇌물이야” 하신다. 우리 집 대추를 딸 때 첫 번째로 딸 수 있는 번호표를 받기 위한 뇌물이란다. 교회 사람들을 다 따준 뒤에 부르지 말고 첫 수확 날 불러달란다. 따는 손맛을 즐기고 싶다나?
아직 연둣빛 애기 열매인 대추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터에 미리 수확 대기표를 맡다니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물론 그리하겠다며 뇌물을 접수하였으니 꼼짝없이 H여사를 대추 따는 첫날 불러야만 한다.
사전적 의미의 뇌물(賂物)은 어떤 직위 또는 권한이 있는 사람을 매수하여 사적인 일에 이용하기 위해 건네는 돈이나 물건 따위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정의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한다.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 시대 때부터 이미 뇌물은 사회의 골칫거리였다. 당시 이집트 왕조는 뇌물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하는 선물'로 규정하고,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선물을 살포하는 행위를 단속했다고 한다.
한국의 ‘김영란 법’이라는 것도 오랜 역사를 가진 뇌물을 차단하기 위해 생긴 법으로 사회정화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다. 예전에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와이로’라는 말이 흔했다. 일본어로 와이로(わいろ)를 주면 통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한다. 지금 국립국어원에서는 부패를 연상케 하는 ‘와이로’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금했다.
최근에 내가 받은 두 뇌물은 국가와 상관없는 데다 어둠 속에서 뒤로 건넨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선한 뇌물이 아닐까?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뇌물은 뇌물이 아닐 것이다. 이름표를 단 뇌물은 처음본다.
#뇌물#착한뇌물#귀여운뇌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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