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음의 닻이 되는 작은 행복들

Joanne 1 2021. 6. 12. 18:33

마음의 닻이 되는 작은 행복들

[이 아침에] 이정아 / 수필가  | [LA중앙일보] 2021/06/11 미주판 22면
| 입력 2021/06/10 20:00


“아가들아 잘 있었니?”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이 안부인사를 한다. 남편을 알아본 것들이 벌써 난리법석이다. 첨벙하고 튀어 오르고 기척을 향해 몰려든다. 금붕어가 꼬리를 심하게 흔들고 이끼 먹는 못난이 메기 두 마리도 벽을 타고 슬금슬금 다가온다. 미꾸라지들도 주인을 알아보고 세리머니를 하는 듯하다. 물고기도 생각 없이 사는 게 아닌 모양이다.

여행가방을 안에 들이지도 않고, 현관 앞 작은 연못을 들여다보며 남편은 먹이를 다 먹도록 기다린다. 붕어 밥 먹는 소리가 사람 못지않게 시끄럽다. 유난히 식사시간에 쩝쩝거리는 소리에 민감한 남편이다. 그런데 물고기의 입맛 다시는 소리엔 무척 관대하다. “그렇게 배가 고팠어?”하며 안쓰러워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친절하기가 한량없고 부드럽기가 배(梨) 속 같다. 내 기억으론 마누라인 내게도 그렇게까지 상냥했던 적은 없는 듯하다.

때맞춰 물풀을 넣어주고 연못청소도 지극정성으로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 물고기들은 튼실하다. 횟감용 금붕어라며 엽기적인 농담을 하는 나는 동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식물엔 취미가 있는가 하면 그도 아니다. 가끔 상추 잎을 따러 나가거나 토마토나 고추를 밥상에 올리긴하나 텃밭 관리도 남편이한다.

별스럽지도 않은 이러한 일상의 조각들이 우리 삶의 풍경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삶의 지속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애써 일을 만들지 않는다. 시원치 않은 몸을 핑계로 그저 무탈한 하루하루에 만족한다. 한마디로 함량미달이며 게으르다.

오래전 영국의 BBC방송에서 ‘How to be Happy’라는 것을 제작했다. 그걸 엮은 것이 ’ 다큐멘터리. 행복’이라는 책이다. 전문가 6인의 위원회가 연구한 친구, 돈, 일, 가족, 건강, 애완동물, 휴가, 영성, 나이 들기 등 17가지 분야에 걸친 행복 지침서이다. 크고 의미 있는 일만 소중하게 여기지 말고, 사소한 일일망정 정성을 다하고 그것을 마음의 닻으로 삼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한다. 예컨대 식물 기르기, TV 시청 줄이기, 낯선 사람에게 미소 짓기, 애완동물과 친하기 등만으로도 사람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펜데믹동안 남편대신 금붕어 먹이 주는 일과 텃밭의 일부를 맡아 건사했다. 늘 보아왔던 풍경으로 인해 내 안에도 일종의 귀속 감정이 생겼나 보다. 금붕어는 내게도 점프를 하며 반가워했다. 사람을 아는 머리가 아니라 먹이를 아는 거였다.

후레이크를 듬뿍 주며 나도 말을 걸었다. “붕어야 많이 먹어”. 주렁주렁 달린 한국 고추에게도 한마디 건넨다. “애썼다. 너도 이민 왔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새로생긴 나만의 이 리츄얼(ritual)이 앞으로 나의 삶을 다독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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