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현금과 나팔로 노래하라”

Joanne 1 2021. 5. 24. 09:05

 

 

현금과 나팔로 노래하라

이정아

교회 성가대로 봉사할 때였다. 옆자리의 연세 많으신 권사님은 눈이 어두우셔서 내게 종종 가사를 묻곤 하셨다. 보통 “수금과 나팔로 찬양하라” 로 익숙한 노래였는데 그날의 악보에는 “현금과 나팔로 찬양하라”로 나와있었다. 외국 성가를 번역하다 보니 생긴 차이라 할 수 있다. 수금이나 현금이나 매일반으로 ‘손으로 연주하는 현악기’ 일 터. 요즘의 미니 하프나 크로마하프 정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거 현금이 뭐이니? 현찰 이가?” 하시는 거다. 이북 사투리로 물으시는데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해서 장난기가 발동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한술 더 떠서 “교회 악보에 캐시(cash)를 다 쓰고 말세다 말세” 이러셔서 그 놀라운 응용력에 폭소를 했다. 그날의 성가를 부르면서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로 받은 쪽이나 주는 쪽에서 모두 선호도 1위는 현금이라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뭐니 뭐니 해도 money’라는 라떼 개그가 농담이 아닌 시절이 왔다. 가정의 달에 어린이날, 어머니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결혼기념일과 남편 생일까지 있어서 특별 지출이 많은 5월이다. 나갈 지출을 생각하면 들어오는 선물도 현찰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날 아들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투고해오면서 꽃과 케이크, 초콜릿을 소소하게 챙겨 들고 왔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엄마 생각을 한 그 마음이 기특했다. 그 앞에서 “돈이 더 좋다”는 말은 안 나왔다.

한국의 친정어머니는 시댁 친정 통틀어 유일한 어른 생존자 이시다. 88세 미수(米壽)이신 엄마는 약간의 치매와 더불어 쇠약한 상태이시다. 요양사와 세 아들의 지극한 봉양으로 근근이 살고 계시다. 그 어머니가 놀랍게도 미국으로 전화를 하셨다. “ 어머니날 돈은 송금했냐? 은행 바뀐 거 알지?”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의 여전한 경제관념이 대단해서 박수를 쳤다. 이런 정도의 정신이면 오래 사실 것 같기에.

시카고에 사는 조카와 35년 만에 만났다. 팬데믹 동안 조카의 할머니이자 내겐 이모인 96세 노인이 돌아가셨다. 아픈 엄마한테는 언니의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 조카사위는 팬데믹으로 아버지와 숙부와 이별을 했다. 그 와중에 한국의 다른 한 조카와 사촌의 딸은 결혼을 했다. 슬픔도 기쁨도 제한을 받은 조심스러운 팬데믹의 세월이었다. 경조비만 공중을 날아다닌 희한한 날들을 겪었다. 팬데믹이 종식이 되어도 간단한 삶의 방식으로 점차 전환이 되어갈 것만 같다. 인정은 점차 메마르고 최소한의 도리만 남은 삶이 되지 않을까?

예전에는 아프지 않은 엄마가 돈을 채근하면, 남편 보기에도 민망하고 세속적으로 보여 속상했다. 그런 엄마가 밉상이었다. 이젠 그렇게라도 살아계심이 감사하다. 가족을 돌아보는 가정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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