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우리 마음속의 ‘사랑주머니’
[LA중앙일보] 2021/02/17 미주판 17면
입력 2021/02/16 19:00
이정아/수필가
사방이 하트로 도배를 하는 사랑의 날이 무사히 지나갔다. 한국에 살던 시절엔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 고백하는 날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일본, 중국, 한국의 동남아권 에서는 2월 밸런타인데이에 진 빚을 갚으라고 3월 화이트데이가 생겼다고도 한다. 3월엔 남자가 여자에게 캔디를 준다나 뭐라나. 일본에서 들어온 풍속이라는데 아무래도 초콜릿 회사가 만든 상술인듯하다.
그러다가 미국에 오니 한국과는 양상이 달랐다. 성 발렌티노 신부가 등장하는 전래된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꽃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밸런타인데이인 것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 조부모, 선생님에게 하트를 그리거나 색종이로 오려 붙인 카드를 선물하고. 대개 남자가 아내나 연인에게 꽃 선물을 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민 초기엔 살기 바빠 밸런타인데이를 챙기지 못하고 살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아이도 낳고 이미 한물간 사이가 되었기에, 꽃을 주지도 않았고 못 받아서 속상해하지 않고 살아왔다. 꽃은 시들면 치우기가 귀찮고 남편은 절기에 상관없이 화분은 잘 사 오기에 꽃에 대한 목마름은 없었다.
해마다 교회에선 하트 풍선을 배경으로 부부 사진을 찍어줘서 그 행사가 밸런타인데이 기념이 된 지 오래다. 늙음을 기록하는 행사랄까. 장식장에 놓인 십여 개의 부부 사진이 시나브로 낡아가는 내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그 기록사진마저 없어 서운하던 차에, 꽃다발을 두 개씩이나 받았다. 하나는 친구의 아들로부터 하나는 남편으로부터 장미꽃을 받았다. 남편에게 받은건 엎드려 꽃받기 였으나 그래도 통했다. 여태의 서운함(?)이 다 상쇄된 꽃의 위대함이여.
인디언 부족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늙은 추장이 손자에게 말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하나는 분노의 늑대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늑대란다.” “할아버지,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어린 손자가 묻자 추장이 대답했다. “그야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지.”
우리 마음속에는 사랑과 이해와 용서의 감정이 생기고, 때로는 분노와 시기와 질투가 고개를 든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전자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나는 과연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나?
부부나 연인끼리만 사랑을 구하고 확인하고 서운해할게 아니라 이웃에게도 사랑을 전하며 살고 싶다. 그러려면 사랑의 늑대를 배불리 먹여야 한다.
함동진 선생의 동시 '복주머니'에는 이런 아름다운 구절이 있다."네 마음 속에 평생 사랑주머니 달고 다녀라. 언제나 따스한 마음 가득 채우고 사랑에주린 사람만나거든 나누어주거라.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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