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비대면 시대의 쇼핑
[LA중앙일보] 2021/01/15 미주판 18면
입력 2021/01/14 20:00
이정아/수필가
비대면 시대가 되니 사람 만나는 일이 없어졌다. 눈에서 멀면 마음도 멀어지듯 연말연시에 여기저기 챙기던 선물은 준비하지 않아도 덜 미안한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평소 늘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과 날 챙기던 제자한테는 무어라도 보내고 싶었다.
선생님은 연세가 드셔서 부엌일이 힘드시다니 반 조리된 음식을 주문해 보냈고, 샌프란시스코의 제자한테는 크리스마스 꽃을 주문해 보내고 할 일 다 한 듯 흡족했다.
주문처로 부터 명절 전 배달을 확약받은 터라, 안심하고 기다리며 설렜다. 선물 받고 반가워할 모습들을 미리 그려보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웬걸. 선물의 절기를 맞아 배달 물량이 너무 많아서 운송회사가 날짜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날짜를 두 번씩이나 연기하다가 크리스마스도 훨씬 지나 열흘 늦게 도착한 양념갈비는, 다 상해서 돌려보냈다. 돈 쓰고 맘 상하고 결례하고, 이메일과 전화로 주문처와 택배에 연락을 주고받느라 열이 뻗쳤다. 꽃은 바쁘다는 꽃집에 취소 연락을 하고 느지막이 1월로 날짜를 변경하여 우여곡절 끝에 배달되었다.
7년 전 한국에서 수술받고 회복하느라 일 년여를 머물 때가 있었다. 열 평 오피스텔에서 차 없이 지냈어도 모든 게 배달이 되니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다. 마트에서 그로서리가 오고, 음식 배달은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고 홈쇼핑에서 소소한 생필품이 주문이 되니 편리한 천국이 여기로구나 했다. 그 부럽던 세상이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에서도 시작이 되었다.
아마존이나 이베이 정도이던 배달이 백화점에서 편의점까지 동네 마켓, 베이커리, 반찬가게, 온갖 음식점이 줄줄이 배달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처럼 새벽 배송이니 총알배송이니 로켓 배송이니 하는 다채로운 시스템은 아니지만 배달 시대가 앞당겨진 것은 틀림없다.
음식 배달 앱이 세 가지 깔린 스마트폰이 나의 메뉴를 정한다. 중식 일식 한식 양식 입맛대로 먹을 수 있다. 문 앞에 두고 가는 비대면 옵션을 택하기에 미리 팁도 포함 계산해 놓는다. 배달앱의 지도는 배달원이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편리한 세상이다.
편하다는 건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팬데믹의 경제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하고 배달의 전선에 종사한다고 듣는다. 우리들의 친구이기도 친척이기도 할 터이다. 집안에서 주로 온라인 쇼핑을 하는 나는 택배 상자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현관에 쌓인다. 현관 옆 야외 식탁에 작은 생수 몇 병 놓아둔다. 배달하는 분들 잠시 목을 축이 시라는 마음으로.
냉수 마시고 심호흡 한번 하고 이 고난의 세월을 함께 건너가 보자고.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쑥 캐러 간 날 (0) | 2021.03.17 |
---|---|
사랑주머니 (0) | 2021.02.17 |
뜨개질과 시행착오/이정아 (0) | 2020.11.18 |
신발에 거미줄 치다/이정아 (0) | 2020.10.17 |
부부도우미, 냥이 집사 (0) | 2020.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