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나로 돌아오며
[중앙일보 미주판] | 입력 2021/12/27 17:24
이정아/수필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손톱만큼의 유산을 나누게 되었다. 4자녀 상속인 중 맏이인 나는 미국 시민권을 받을 때 한국 국적이 상실되었다. 상속을 받으려면 예전의 임 씨였던 내가 미국 와서 이 씨가 된 이유를 진술하고 내가 나임을 공증받아야 했다. 성이 바뀐 내가 어머니의 딸임을 증명해야 하는 세칭 ‘동일인 증명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장례식 마친 후 한 달 뒤에나 미 대사관의 공증 인터뷰 약속이 잡혀 그걸 끝내고 오느라 팬데믹의 감옥살이를 했다. 면역력이 없는 장기이식 환자여서, 시간이 많아도 동창이며 친지를 만날 처지가 아니었다. 엄마 사시던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노후에 많이 쓸쓸했을 엄마를 생각했다. 나의 무심과 자식 노릇 못한 불효가 새삼 죄스러웠다.
빈집에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우면 건강에 해롭다며, 동생의 배려로 동생집으로 옮겨 오래 신세를 졌다. 한국의 문학잡지에 몇 년째 책 소개와 독후감을 연재하는 동생은 출근 전에 추천도서를 골라서 거실의 콘솔 위에 두고 나갔다. 숙제처럼 그 책들을 읽느라 하루하루가 빨리 지났다. 미국에 홀로 떨어져 사느라 잊고 있었던 혈연을 느껴보는 뭉클한 시간이었다. 동생들과 올케와 조카들의 환대를 받은, 임 씨로 지낸 두 달 간의 한국 생활이 고맙다.
길었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이 씨로 복귀했다. 아버지의 성을 떼어내고, 체면이나 맏이의 부담이 없는 막살아도(?) 되는 나의 천국으로 온 것이다.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이곳이 더 안심이 되는 까닭은 무얼까? 덜 조신해도 양해가 되는 미국이 편하고 자유롭다.
길게 떨어져 있어도 아쉽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는, 나의 이 씨의 원조격인 남편 말이 서운하지 않다. 물론 나도 그러했으므로. 결혼 생활 40년 차가 넘으면 애틋한 사랑보다는 씩씩한 동지애로 사는 것이지 않은가 말이다.
세상은 모두 쓸모 있음의 쓸모는 알아도, 쓸모없음의 쓸모인 무용지용은 모르고 산다. 쓸모 있는 나무들은 그 유용함으로 인해 참상을 겪는다. 과일나무는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잡아당겨 타고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재목감으로 좋은 나무는 남 먼저 도끼나 톱으로 잘리고 만다. 그래서 못생긴 나무는 무용지용을 통해 이루어 낸 생존 전략을 넘어서 자유롭게 소요(逍遙)할 수 있는 나무로 자라게 된다. 이렇게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쓸모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늙은 부부는 가끔은 서로 효자손을 대신하고, 외출할 때는 종종 팔짱으로 지팡이를 대신하는 사이로 산다. 무용지용의 나로 돌아왔다. 쓸모 있던 나도 쓸모없던 나도 모두 나였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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