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마운 사람들/이정아

Joanne 1 2022. 6. 1. 13:58

[이 아침에][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05.31 18:46

고마운 사람들


누워서 방바닥에 엑스레이 찍기가 취미인 여자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남자가 여행을 떠났다. 남자의 생일과 둘의 결혼기념일이 같아서 연례행사로 하는 여행이다. 전적으로 남자가 계획하며 여자는 하나의 여행가방처럼 따라갈 뿐이다. 여자는 여행 중에 읽을 책 세 권과 게임용 아이패드만 챙겼다. 남자는 서핑과 스노클링에 필요한 옷과 장비를 챙기니 여자보다 짐이 많다.

몸을 혹사하여 체험을 해야 여행으로 여기는 남편과 달리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인물 관찰이 나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밖의 경치를 구경하러 갑판으로 갔던 이들이 높은 파도로 배가 흔들리자 다시 객실로 들어오려 애쓴다. 젊은이들은 쉽게 들어왔으나 세 할머니가 두 계단을 못 내려오고 몸이 이리저리 쏠리며 중심을 못 잡는다. 참한 젊은 여성 한 분이 달려가 한 사람을 부축해서 자리에 앉히고, 또 다음다음 세 사람을 안전히 앉혔다. 배 안에서 만난 관광객끼리일 뿐인데 돕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Cabo San Lucas에서 sunset 크루즈를 할 때의 한 장면이다.

마음은 원이로되 내 몸도 잘 추스르지 못하는 나는 도울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그 광경을 보곤 서양사람들도 어른을 공경하는구나 안도하였다. 그 참하게 생긴 여성분은 멕시코 여성이었는데 부모와 자녀와 함께 3대가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조신하고 얌전하던 그녀가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갑판 위에서 살사춤을 얼마나 잘 추던지 배 안의 모든 여행객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반전 매력이었다.

호텔 입구에서 여행상품을 파는 제시라는 여자분은 애너하임에서 20년을 살다가 멕시코로 역이민을 한 여성으로, 엘에이에서 왔다니 얼마나 친절하던지 옵션 관광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긴 걸음을 잘 못 걷는 나는 여행 갈 때 지팡이를 필수로 가져간다. 짧은 거리는 남편을 의지하여 걷지만 조금 더 걸어야 하면 지팡이가 필요하다. 공항에서 길고 긴 낭하를 가려면 반드시 휠체어 서비스를 의뢰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이 있어 여행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와는 정반대의 활동적인 남편과 살려니 불편을 감수하면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실은 몸이 불편하다기보다 민폐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면 받게 되는 주변의 서비스는 지극하고 고맙다. 공적으로는 그 서비스를 누린다 쳐도 남편에게 받는 서비스는 민폐 같아서 미안하다.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고 때론 부축하고 휠체어도 밀어주는 사람. 운동회도 아닌데 늘 2인 3각을 하는 고달픔이 왜 없으랴. 남의 도움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는 뒷바라지를 하는 남편에게 항상 미안하다. 고마움을 감사하지 못하고 미안함에 신경질로 표현하는 내가 답답할 뿐이다.

여행 중에 만난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정아 / 수필가

# 이 아침에 # 휠체어 서비스 # 민폐가 마음 # 게임용 아이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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