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벼락치던 날

Joanne 1 2015. 9. 19. 09:35

 

 

 

 

 

벼락치던 날

 

                                                                                                이정아

고막 터질 듯 천둥이 치고,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지그재그 섬광이 여러번 번쩍했다. 한참의 가뭄 끝에 오는 '마른하늘의 날 벼락' 같았다. 잘못도 없는데 문을 잠그고 숨을 죽였다. 낮은 자세가 좋다고 들어서 방바닥에 엑스레이 찍듯 납작 엎드렸다. 집에 세워진 철탑 (오래전 무선통신에 심취한 남편이 세운)이 벼락을 불러들일까 오금이 저린다. 언덕 위 집의 높은 철탑은 벼락 칠 때가 가장 위험한 구조물이 아닌가 싶다. 다행인지 벼락이 피해가고 길 건너 낮은 지대에서 불이 났다고 저녁뉴스는 전한다.

대부분은 티비 안테나를 거창하게 세운 줄 알지만, 길을 지나던 무선햄 회원들은 반갑게 알아 보는 탑. 너무 커서 철거도 어려운 애물단지이지만, 벼락 치면 내 죄를 절로 달아 보게 하는 저울이다.

아무튼 미국에 와서 본 가장 큰 천둥 번개였다. 그 벼락 때문에 온 동네가 정전이 되었다. 오전 10시경부터 DWP에서 사람들이 오가더니 전신주 위의 변압기를 바꾸어야 한단다. 고가 사다리차가 오고 기술자와 전공이 오고 그거 하나 고치는데 소방차만한 큰 차 세 대가 동네 길을 다 막았다.

눈치 빠른 젊은 앞 집 내외는 차를 타고 미리 나갔는데, 나는 차에 막혀 오도 가도 못 하고 마당에 의자 놓고 수리 현장을 구경 했다. 한국 같으면 전신주를 기어 올라가 솜씨 좋게 고치고 내려오는데 한 시간이면 될 것을, 준비만도 몇 시간이다. 집집마다 다니며 길에 주차된 차번호 적고 빼 달라 양해 받고 싸인 받느라 한나절.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전신주에 매달린 전공, 그 옆 붐 리프트에서 안전을 체크 하는 기술자, 아래에선 무전기로 지시하는 매니저 등 7명이 분주히 움직여서 오후 4시가 되어 마쳤다. 답답해도 세 단계의 안전 확인을 거친 작업모습이 미국다웠다.

그 사이 배가 고파 집에 들어와 요기 거리를 찾았는데, 전기 없으니 되는 게 없었다. 쿡 탑도 마이크로웨이브 오븐도 심지어 정수기의 더운 물도 맹탕 이다. 인터넷도 불통, 오로지 쓸 수 있는 건 핸드폰 뿐이다. 인스턴트 음식이 집에 널려있어도 무용지물이고, 재료는 있어도 요리 할 수 없으니 한심 했다. 마른 빵을 씹으며 처량했다.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없다니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전기 없던 옛날엔 어찌 살았을까 궁금하다. 반딧불로도 공부를 해서 형설지공이란 말도 나오지 않았던가. 호롱불을 끄고 떡도 썰고 붓글씨를 쓰던 이도 있고. 궁하면 통하게 되어있거늘 궁핍을 모르는 시대를 산 요즘엔 대책 없는 것이 난감하다. 이곳서 태어난 아들아이는 어려움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더더욱 대비도 모른다. 어려우면 부모에게 보험 든 듯 청하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정전된 하루 낮을 지내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전기와 함께 누린 모든 것이 정말 감사한 일 이 었음을. 우리가 미처 감사하지 못하고 지낸 것이 전기 말고도 많다는 걸 일깨워준 고마운 벼락의 날.

장석주 시인의'대추 한 알'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8월15일 2015년

 

출처 : 나성 이야기
글쓴이 : joanne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