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서비스를 받으러 갔다. 차를 맡기고 휴게실에서 기다리는데 분위기가 마치 독서실 같다. 대기실 한 켠에는 온갖 종류의 스마트폰 충전기가 달린 파워 타워가 서있다. 사람들은 안마의자에 앉아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편리하다.그러나 서로에겐 무심하다. 조용한 분위기여서 책을 펼쳤다. 종이책을 읽는 이는 나 혼자였다.
인류가 새롭게 진화를 시작했단다.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호모 모빌리언스(Homo Mobilians)'로 수퍼인류화 하는 중이란다. "개인은 스마트폰 아바타로 수퍼맨으로 진화하고, 인류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집단 생명인 초인류로 진화한다." 한국의 멀티미디어 학회 회장인 교수님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마음을 읽는 '감성 컴퓨팅'이 대세라니 사람과 기계가 합체된 형국이 아닌가?
평범한 회사원도, 나처럼 집에서 살림만 하는 아줌마도 스마트폰을 통해 수퍼맨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지식을 즉시 검색하고 원격 투시 등 초감각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백과사전을 옵션으로 가지고 다니는 터이니 옛날처럼 머리 싸매고 공부할 이유도 없는 세상이다.
영화 '아바타(Avatar)'에서 판도라 행성의 나무들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뜻이다. 시간, 공간, 인간이 융합하는 합일의 세상이 오고 있다. 영화 속 공상이 현실화 되는 세상이 내겐 아직 벅차고 두렵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거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책에서 얻었다. 책을 몰랐더라면 미개인처럼 살다가 죽었을 것이니 책은 내게 삶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책에서 얻는 것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겐 인터넷이 책을 대신하고도 남고 책보다 친절한 지혜의 샘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얼마 전 중앙일보의 칼럼을 읽었다. '종이책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는 글인데 공감했다. 종이책에 대한 애잔함이 있는 내 마음과 같았다. 시류에 따라 전자책을 2004년과 2005년에 두 권을 만든 적이 있다. 한국문학도서관 내 서재에 아직도 있지만, 칼럼의 내용처럼 전자책의 편의성이 종이책의 감성을 이기지 못한다는 걸 체험했다. 내 글이어도 내 책 같지 않은 마음이다. 공중에 떠돌며 자리 못 잡은 자식 같은 전자책.
책이 좋다보니 도서관 후원회에서 봉사한 지 20년이 넘었다. 피오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에 새 책을 구입하는 기금 마련을 위한 북 세일을 4월 30일 토요일에 한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이책을 아주 싼 값에 구입하고, 그 기금이 새 책으로 재탄생하게 되니 아름다운 순환이지 않은가?
현대의 사상들은 책의 보급과 함께 사회의 가치가 되고 동력이 되었다. 책이 시민의식 형성의 필수요소가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인간다운 처신에 대한 개념이 점점 없어지는 것도 독서하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을 돕는 북 세일에 많은 관심이 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이 아침에] '호모 모빌리언스'와 책
이정아/수필가
LA 중앙일보 발행 2016/04/28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4/2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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