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러운 '인생 이모작'

Joanne 1 2016. 5. 11. 23:15







운동을 마치고 친구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안면이 있는 J여사가 식당으로 들어온다. 식사 약속이 있어 오는 줄 알고 인사했더니 일하러 왔단다.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두르고 콩나물을 다듬기 시작한다. 식탁 정리하고 식재료 손질하는 일을 하루에 4시간씩 하고 있단다. 신선했다. "당당해서 보기 좋아요" 했더니 내 손을 잡고 무척 고마워한다.

만나는 이마다 "뭐하는 짓이냐?" 하기도 하고 측은한 눈빛으로 보기도 해서 민망하고 기분도 안 좋았는데 그리 말해주니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다며 좋아한다.

식사 마친 후 둘러앉아 함께 콩나물을 다듬었다. 아귀찜에 넣을 거라며 대가리와 꼬리를 다 떼어야 한단다. 집에서도 안 해본 짓이 처음엔 재미있었으나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허리도 아프고 힘에 부쳤다. 콩나물 다듬기도 어려운 저질 체력의 나는 칠십에 가까운 J여사의 건강이 부러웠다.

한의대 교수였던 남편이 소천했지만 생계가 어렵지도 않고 든든한 아들들이 지원하고 있는 그녀는 돈 때문에 일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미 알고 있던 터여서 이해했다. 집에서 TV 보고 뒹구는 것보다 사람도 구경하고 재미있어서 일하는 게 즐겁단다.

소설가 Y선생님은 60세 넘어 늦은 취업을 하시고 10년 넘게 일하시다 얼마 전 은퇴하셨다. 인생 이모작을 마치신 셈인데 아직도 활력이 넘치셔서 삼모작도 가능해 보인다. 늦게 은퇴 할수록 건강하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나보다도 젊어 보이신다.


서울의 강남에서 서점을 하던 친구는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은 후 2년 사이 소설집 두 권을 냈다. 서점 경기가 나빠 폐업하더니 종이책을 낸 것이 아이러니하다. 인생의 갈피엔 늘 이중성이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도 부지런히 글을 쓴다. 소설가로서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젊어서는 생계를 위해 해야만 했기에 몰랐던 일의 즐거움. 이모작을 통해 행복해 하는 이들의 삶을 자주 본다. 인생 2막을 교육하는 라이프 코치로 활동 중인 한국의 수필가 L선생도 부럽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미 이모작 한 후 남들에게 이모작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어떤 이는 머리를 쓰고 때론 몸을 쓰며 직업에 종사한다. 무슨 종류의 일이거나 애쓰고 수고하는 일은 귀하다. 펜을 굴려도 노동이요 몸을 굴려도 노동이니 일하는 종류가 다를 뿐이지 종사하는 사람의 인격이 다른 건 아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이는 사농공상의 틀에 묶인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밥을 위한 생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밥이 우선순위가 아닌 시니어들에게 일거리가 있다는 건 덤이자 축복이다. 노년의 일자리는 단순한 것이 좋으리라.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건 게으름이 아닐까?

아프다며 사무실 일도 안 시키는 남편에게 야구 연습장의 코인이라도 팔겠다고 사정해야겠다. 이모작이 어려우면 1.5모작이라도 해야 덜 억울할 100세 시대이기에.




[이 아침에] 콩나물 다듬어도 행복한 '인생 이모작'
이정아/수필가 중앙일보 LA 발행  2016/05/11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5/10 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