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 아침에]역지사지의 인생/이정아

Joanne 1 2017. 5. 31. 22:56



 

역지사지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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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생쥐가 소리친다 "오, 천사로구나!" 생쥐의 눈에는 날개 달린 박쥐가 천사로 보일 수 있겠구나 하고 실소했다. 작년에 91세를 일기로 작고한 프랑스 작가 미셸 트루니에의 '외면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쥐들이 아닌 인간세계에서도 종종 이런 착각을 한다. 모두들 자기 처지나 입장에서 사물과 현상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남을 판단함으로 인해 자주 부딪치게 된다. 오죽하면 인간은 마음속에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두마리 개를 키우며 산다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며 살아야한다. 그 역지사지란 것이 말처럼 쉽지않은 것이 문제다. 
가게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 다툰 후 여직원은 일을 안 한다고 중간에 가버리고, 집에서 놀던 내가 호출되어 임시로 일을 해야했다. 알아보니 가게 문을 누가 여느냐가 문제가 되어 싸웠다고한다. 누구든 먼저 오는 이가 열면 되지 싸울 일이 뭐람. 두사람이 모두 열쇠를 가지고 있는 터이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게이트를 열어 한쪽으로 밀어 놓아야 뒷사람이나 손님차가 들어올 수 있다. 번거롭기도하고 철문을 미는 것이 조금 힘들긴하다. 으레 그걸 남직원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최근 한 두번 했다고 불평하고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연약한 여자여서 육중한 게이트는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명백한 성차별을 자초한 것이다. 평소 일할 때도 몸을 사리는 편인것을 눈치채고는 있었다.  요즘 세상에 일에서 남녀차별은 없어진지 오래이다. 늘 게이트를 열고 힘든 일은 여직원 대신 도맡던 남직원은 오히려 당황해했다. 그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가게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오는 날은 조금 늦을 경우도 있단다. 일주일에 하루일 뿐인데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의 부재가 오해를 낳은 것이다.
성숙의 가장 중요한 표식이 역지사지의 능력이 아닐까. 반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와 상상력, 다른 사람과 같이 느껴보는 감정이입의 능력, 나아가서는 사적인 감정과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입장에 서서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사는 것이 강팍하다보니 조그만 손해도 용납 않는 전투력을 저마다 가슴에 품고 사는 듯하다. 사는게 전쟁이요 경쟁이다. 그러나 베풀지 않고 받으려고만 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인생살이이다.
두 사람을 설득해 중재하려고 영어로 역지사지를 찾아보니 의역이지만 '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라고 되어있다. 예전부터 알던 체로키 인디언 속담 "다른 사람의 모카신(Moccasin)을 신고 두 달 동안 걸어보지 않고서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과도 통하지 않는가?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사는 기본이 '역지사지'임을 배운다.

인도 여성과 라틴계 남성 직원의 싸움 덕에 한국인 주인은 사전까지 보며 열공 중이다. 부디 잘 해결 되었으면 좋겠다.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 수필가 이정아


기사입력 2017/05/30 2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