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엄마와 딸, 그 애증의 편린/이정아

Joanne 1 2017. 5. 11. 22:57


[이 아침에] 엄마와 딸, 그 애증의 편린

이 정 아 / 수필가

[LA중앙일보] 05.10.17 19:34

한국은 5월 8일이 어버이날이지만 미국은 5월 둘째 주일이 Mother's Day다. 미국에서 산 날 수가 많다 보니 어느새 미국식 어머니날을 챙긴다. 한국의 모친이 전화하셨다. "얘, 돈이 안 들어왔다." 어머니날인데도 전화도 없고 입금도 안 되었다고 서운해하신다. 동생들과 올케들은 하루 전날 다녀갔다나?

내가 오히려 당황했다. 안부가 딜레이 되었다고 효심의 유무까지 의심을 받다니 말이다. 이곳에서 5월 1일 송금했는데 한국의 연휴가 끼어서 조금 기다려보시라 말하니 누그러드신다. 심지어 송금한 날 전화해서 미리 어머니날 축하멘트도 했건만 그새 잊으셨나 보다. 성의 없는 현금으로 어머니날을 때우긴 했어도, 체면 불고하고 돈을 채근하는 엄마가 남편 보기 민망했다.

어머니는 머리가 좋았다. '연희동 암산왕'이라고 불리며 여러 개의 '계'를 운영하셨다. 계산기가 없던 시절 어머니가 컴퓨터처럼 장부를 통째로 달달 외우면 모두들 놀라곤 했다. 시인이며 신문기자인 아버지는 그저 술만 좋아하고 경제력은 별로였던데 반해 어머니는 활달하며 이재에 밝았다. 우리 집에는 어머니의 동창과 계원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그 중엔 이웃해서 살다가 후에 영부인이 되신 분도 계셨다. 어머니는 자랑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이ㅇㅇ 여사가 내 계원이었다." 어머니의 생활력 덕에 가난한 시인을 아버지로 둔 우리 네 남매가 대학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래전 성악을 공부하시고 합창단의 멤버였던 어머니는 클래식이나 성악곡을 다 알아들으시고 원어로도 부르신다. 지금도 노인합창단에서 솔로이스트로 활약 중이시다. 어려움이 있어도 늘 노래를 달고 사시는 긍정 마인드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다른 집 엄마들처럼 자식을 위한 희생 이런 것은 없었다. 간식도 아이들 넷에 엄마 몫까지 늘 5등분을 했다. 딴 엄마들에 비해 엄마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며 어릴 땐 동생들과 성토하기도 했다. 엄마를 닮기 싫다고도 했으며, 차분하고 책만 보는 아버지에 비해 물질 지향적인 엄마가 고상하지 않아 부끄러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사시는 지금도 매우 씩씩하시고 독립적이시다.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신다. 그러나 대장암 수술을 받으시고는 예전보다 많이 기운이 떨어지셨다.

씩씩한 어머니도 고민이 있으면 하나님께 매달렸다.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기도를 하셨던 어머니는 지금도 멀리 사는 우리 가족을 위해 새벽 기도를 빼놓지 않으신다. 이제껏 산 것이 어머니의 기도 덕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사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불효를 하고 있는 셈이다.

돌아보니 나는 어머니 닮은 엄마도 못 되고 자식다운 자식도 못 되었다. " 미안합니다 엄마, 엄마 딸로 태어난 게 감사한 일이었어요." 60 넘은 철없는 딸이 생전 처음 엄마께 바치는 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