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과 분장
이정아/수필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교회를 다녀오신 엄마가 내게 불평을 하신다.
"네가 쓰는 분이 너무 붉으죽죽해서 교인들에게 흉떨렸다."
화장대위에 놓아둔 내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가신 엄마에게 모두들 한마디씩 하더란다.
"미국에선 흑인같은 그런화장이 유행인가보네"
" 바캉스 다녀오셨어요?"
아이고 맙소사. 엄마는 분을 바른게 아니라 색조화장파우더인 섀도우를 바르신거였다.
" 엄마, 이건 얼굴 평수 작게보이라고 그늘 주는 화장품이에요" 그걸 얼굴 전체에 발랐으니 그런소리를 들을만했다. 섀도우곽이 분통처럼 생긴 탓이다.
"미제 좋아하다 망했다" 이러신다. 화장이 아닌 킨타쿤테 분장을 하고 교회를 가신 셈이다. 심지어 미제도 아니었다. 메이드인 코리아.
얼마전 교회의 마이크 시스템을 보완 한 후, 그에 맞춰 악기를 배치하다보니 팀파니가 성가대 옆 강단 높이로 올라가게 되었다. 팀파니 담당 남편은 온교인이 올려보는 높이에서 연주를 하니 조금은 민망한 위치이다. 남편의 검게 탄 얼굴이 내 눈에 자꾸 거슬렸다.
직업이 캘리포니아 땡볕아래의 노가다인지라, 어쩔 수 없다고 본인은 신경도 안쓴다. 팀파니를 치고부터 교회의 노년 팬들이 많아져서 매니저인 나도 팬덤에 부응해야겠기에 강제로라도 분장을 시키려 마음 먹었다. 몇 해전 후배 결혼식 주례를 섰을때, 약간의 분장을 하니 한결 보기좋았던 기억도 있고해서.
싫다는 남편에게 BB크림을 발라준 후 교회에 갔다. 예배후 반응을 물어보니, 지휘자 목사님만 아시더란다. 목과 얼굴의 너무 경계가 뚜렸해 들켰나보다. 다음부턴 티안나게 바르며 분장사 역할에 나름 만족하고 있는데 남편은 여전히 귀찮아하며 반항한다. "오늘은 팀파니 연주가 단 세마디" 라며 분장을 거부했다. 분장을 안해도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혼자 유난을 떨었나?
세상에서 살 때는 화장도, 분장도 심지어 변장도 하며 산다. 맨 얼굴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아니던가. 염치도 양심도 때론 저버려야하니 철판이라도 구해 가려야 할 판이다. 하지만 교회에 주님을 만나러 갈 땐 민낯, 순수한 낯으로 가도 좋을 것이다.
직업상 분장을 해야하는 영국 여배우 틸다 스윈턴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중성적인 그녀는 평소엔 화장을 안한다고 한다. 인터뷰어가 배우로서 성공한 그녀에게 '성공'에 대해 묻자 "내가 내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을 때 그걸 성공이라 생각한다." 고 자신만만 하게 말한다. 생얼의 그녀가 이해되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를 속이려드는 사람들이라고. 자기과시를 위해 자신을 연출 하고 남을 기만한다나? 그녀의 자존감은 대배우 다웠다.
자신있는 사람은 이미 자기가 원했던 그 무엇이 되어 있기때문에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이 세속적인 기준과는 무관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언제쯤 화장에서 자유로우려나?
배우 틸다 스윈턴
<인간과 문학> 2017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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