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친상을 치르고 돌아온 친구를 만났다. 캐나다 여행중에 한국에서 연락이 왔단다. 여행도중 황급히 나가서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생각보다 표정이 편안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구순 가까운 어머니이시고 평소 치매 증상도 있으셨다고 들었기에 호상 이어서 담담한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 말이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 치를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나더란다. 미국에 돌아오니 그때부터 조금씩 그리움이 밀리더니, 불끈 불끈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 생각이 나더라고 한다. 나는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 돌아가시자 나도 그와 같았기에 말이다.
친구는 오래전 유학시절에 받은 엄마의 편지가 유품이더라며 그 편지를 정리하다보니 엄마생각이 더 나더란다. 외국에 보낸 딸에 대한 안쓰러움, 걱정으로 빼곡하게 쓰여진 편지를 읽고 펑펑 울었다는 친구. 그 편지는 거의 자기가 보낸 편지의 답장이어서 자신의 유학 역사를 알 수 있기도 하였다나? 그게 바로 유품 이라며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말한다.
친구와 만나고 와서, 내 어머니는 살아 계시지만 예전에 온 편지를 찾아보았다. 나도 요즈음엔 전화로 때우지 편지 쓴 적이 없다. 글쓰는 아버지의 편지는 귀히 여기고 어머니의 편지는 함부로 두었었다. 찾아보니 어머니의 편지도 꽤 여러 통 있었다.
밑반찬 만드는 여러 가지 조리법, '일본 무'로 깍두기를 담글 땐 소금을 적게 치라는 살림의 지혜, 돈을 얼마 송금했으니 조만간 도착 할 것이라는 안내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딸에게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철자법이 군데군데 틀리기도 한 어머니의 편지엔 아이의 돌상에 올리려고 물어본 약식 만드는 법이 써있었다. "휘쓸러에 찰밥을 되게 짓고, 큰 양푼에 담은 후 흑설탕을 넣고 대추, 밤, 잣을 버무려 렌지에 15분 돌려라" 엄마 식으로 쓴 조리법이다.
"이 서방 잘 먹는 풋꼬추 메루치 볶음은 꽈리고추를 요지로 구멍을 쑹쑹 내서 볶으면 양념이 밴다" 이런 조리법도 있었다. 그 말미엔 "미친x처럼 드리 붓지 말아라 모든 양념은 숟갈로 떠서 조곰씩" 하고 써 놓아서, 마치 과학적인 살림을 하는 사람 마냥 끝마무리를 했다는 것이다.
명색이 가정대학을 나온 딸인데도 엄마는 내 살림솜씨가 못미더우셨던 모양이다.
이 웃기는 레시피를 보고...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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