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름다운 배경으로 살기/이정아

Joanne 1 2018. 7. 17. 00:39



교회의 노인 성경대학 수료식 후 기념 공연이 있었다. 40여명 졸업생들이 흰 셔츠에 검정 하의로 옷을 갖춰 입고 종강을 기념하는 발표회를 하는 것이다. 성경공부 외에 틈틈이 배운 리듬악기를 연주한다. 치매예방에 좋아서 특별활동 시간에 배웠다고 한다. 전에는 라인댄스를 했었는데 이번 학기엔 악기 연주로 바뀌었나보다. 대부분 80세 넘으신 어르신들이다.


노인 대학 학생들이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탬버린 소고 등을 가지고 무대에 섰다. 리듬만으로는 음악이 안 되니 멜로디 부분을 담당할 바이올린 트럼펫 건반 악기를 연주하는 젊은이들이 노인들 앞에 앉았다.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히 악기를 다루는 노년의 모습들이 참 순수했다. 노인 되면 아이 된다더니 오래 산 사람의 표정은 마치 천진한 아이들 같았다.


온 신경을 집중하여 고개와 손으로 열심히 박자를 세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살면서 리듬 맞추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들을 겪은 분들의 단순한 집중이 신선했다. 연세 들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는 구경하는 자녀 손주들에게 귀감이 되었을 것이다.


검정과 흰옷의 노인들이 배경처럼 서있는 앞에 손자 또래의 젊은이들이 앉아있는 걸 보니 공연히 가슴이 뭉클했다. 앞서 사신 저분들의 희생으로 저 삶을 바탕으로 저렇게 밝은 청춘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줄 맞춰 서신 그 모습이 마치 십장생을 그린 수묵화 병풍 같다는 생각을 했다. 흑백의 옷도 그렇거니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의 말간 얼굴들도 할 말 많지만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있는 동양화의 여백 같았다. 거기다 80 이상 사셨으니 장수하는 십장생과도 닮지 않았을까. 학을 닮으신 권사님도 사슴이나 거북 같은 장로님도 소나무처럼 멋진 분도 계셔서 십장생과 연결 지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는데 마치 들러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멜로디에 집중하다 보면 중간에 간간이 들리는 리듬악기의 작은 소리 "칭칭 짝짝 찰찰" 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주객이 전도된 듯 한 것이 요즈음 노인의 역할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사히 연주를 마치니 구경한 내가 더 기뻤다. 머지않아 나도 설자리가 아닌가.


나이 먹는 건 낡음이 아니라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고 기꺼이 다음 세대의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몸소 보여 주신 것 같았다.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어보고자 설치기도 튀기도 했던 젊은 날이다. 그 때를 무사히 건너 온 것은 등 뒤를 받쳐주었던 든든한 배경의 손들 덕분이 아닐까.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에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노인들의 인생 경험과 지혜를 그리 비유한 것이리라. 노인들께 그런 존경의 마음을 표하며 살았던가 나를 돌아보았다. 


존재 한다는 것 그것은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다.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이면 나로 인해 남이 빛나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도록 살 일이다.


[이 아침에] 아름다운 배경으로 살기


이 정 아/수필가

[LA중앙일보] 07.16.15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