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를 위하여
이정아
남편의 재즈밴드가 5월 정기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후, 지난 주말 앵콜 공연을 했다. 거실 한 쪽 남편의 트럼펫 코너에서 하는 연습을 매일 들었기에, 레파토리 전체를 특히 남편의 연주 부분은 외우다시피한다. 그런데도 앵콜 공연에 또 따라갔다.
서로 안 하려던 단장을 제비뽑기로 뽑아, 남편은 이번에 팔자에 없는 단장이 되었다. 뒷바라지랄건 없지만, 청중석에 앉아서 장단맞추고 흥을 돋우는 일도 단장 마누라의 도리라 생각해서 참석을 하였다. 학예회에 나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빅밴드의 여러 트럼펫 주자 중 하나인 남편은 가장 실력이 처진다. 화음을 맞추는 제 2트럼펫을 담당한다. 다른 두 명의 트럼펫 주자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만큼 뛰어나다. 지휘자는 대학에서 트럼펫을 전공한 유명 오케스트라 출신이고, 혼혈인 목사님은 8세부터 트럼펫을 불었다니 루이 암스트롱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팔자로 분다. 그러니 비전공자인 남편에겐 세컨드 트럼펫도 감지덕지할 포지션이다.
무얼하든 질긴 남편이 이젠 질김을 넘어 즐기고 있는 듯 보인다. 15년 사이에 많은 멤버들이 들락날락해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연습에 개근을 할 만큼 성실함으로 다른 멤버들의 본이 된다니 그것만으로도 멤버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지휘자는 엄지를 치켜세운다.
이런 예화가 있다. 세계적인 교향악단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번스타인 선생님, 수많은 악기들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번스타인은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다름 아닌 제2 바이올린입니다. 제1 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제1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참으로 구하기 어렵습니다. 프렌치호른이나 플루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 연주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줄 제2 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2연주자가 되어 주지 않는다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지요."
일등만을 추구하는 세태를 일깨우는 2인자 역할론이 아닌가. 하기야 모든 이들이 솔리스트일 수 없고, 모두가 일등일 수 없으니 2인자도, 열등생도 섞여사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제2 연주자는 어떤 사람과도 연주할 수 있고 제 1연주자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가 있다. 앞으로도 계속 제2 연주자에 머물 남편, 조연이라도 최선을 다해 이왕이면 명품조연이면 좋겠다.
남편은 제2 연주자일망정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트럼펫 연주자' 가 마침내 되었다.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재능이란 성실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주목 받는 비룡(飛龍)은 아니어도, 열심히 나팔부는 잠룡(潛龍)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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