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정아
우리 집에도 실업자가 생겼다. 뉴욕에 소재한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던 며늘아기가 EDD에 실업수당을 신청했다고 한다. 난리통에 큰 회사도 맥을 못 추나 보다. 코로나바이러스 19에 직격탄을 맞고 멈춰서 버린 미국에서 실업대란이 현실화되었다. 미 전역에서 5월 말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4080만 건을 기록했다. 미 의회예산국은 6월의 실업률은 대공황 때의 최악인 24.9%까지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며칠 전 남편의 생일을 맞아 아들 내외가 집에 와서 식사를 함께했다. 며늘아기에게 근황을 물었다. 일을 쉬니 시간이 많아 봉사를 다닌다고 한다. 며늘아기가 실직을 했다 해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젊은 사람에게는 실업이 기회일 수도 있으므로 아들 내외가 알아서 잘 해결할 것으로 믿었다.
“무슨 봉사?”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테스트요”
드라이브 드루 검사소에서 자원봉사를 한단다.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그런 곳은 확진자 일지 모를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하필 그곳이라니. 함께 사는 아들아이가 걱정되었다. 아들 내외는 부모의 걱정은 아랑곳없이 방호복을 입고하니 괜찮다며 쿨하다. 그런 결정을 한 며느리가 못마땅했다.
그 며칠 뒤 아들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엘에이 시청 앞 데모 군중 속 동영상에 아들 내외가 있는 게 아닌가? 피켓도 만들어 들고 있다. “Kill racism” “Justice for all”
실향민인 친정 부모님께 받은 교육은 “데모는 미친 짓, 빨갱이 짓”이었다. 그런 나이기에 아들 내외가 군중 속에 있는 동영상에 기함했다. “울 며느리 운동권 맞네” 실망하여 한숨 쉬니 남편은 오히려 “젊은이들은 그래야 한다”며 아이들 편을 든다.
며칠간 머리가 아프고 잠도 오지 않았다. 팬데믹과 흑백갈등 시위와 폭동 거기다 아들 내외의 현실 참여. 그러다가 신문과 페이스북을 통해 흑백갈등의 원인에 대한 많은 글을 읽었다. 글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가구당 ‘40 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는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400만 흑인들에게 나눠주기로 약속된 보상이었다. 긴 세월의 노예노동에 대한 물리적 보상차원이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잠깐 시행되었던 이 명령은 그해 4월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바로 폐지되었다. 이미 수만 명의 흑인들에게 배분됐던 땅도 다시 압류됐다.
그때 이후 ‘40 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는 흑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했던 보상의 상징이자 백인들에 대한 원한과 배신감을 상징하는 문구가 되었다.
이것 말고도 99년 전,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서 벌어진 인종폭동도 있다. 백인 폭도들로 인해 흑인 부유촌이 초토화되고 흑인 다수가 학살당한 슬픈 역사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흑백 인종 간 갈등이 단순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아들 내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아들 내외는 그런 역사를 다 배웠을 터였다. 약자의 편에 서서 돕고 사는 게 바르게 세상을 사는 법이라는 걸 아들 내외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생각 없이 사는 철부지 내외라고 염려했는데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내게 하나님은 도처에 스승들을 숨겨놓으셨다.
[LA중앙일보][이 아침에]
2020/06/16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6/15 18:56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시대의 병원 풍경 (0) | 2020.08.29 |
---|---|
올 것이 오다/이정아 (0) | 2020.08.06 |
자가격리중의 알바/이정아 (0) | 2020.04.18 |
아버지의 귤나무/이정아 (0) | 2020.03.12 |
향기일까 냄새일까?/ 이정아 (0) | 2020.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