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 of way
이정아
언덕길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길이 가파르고 좁다. 양쪽 길옆에 차를 세우고 나면 가운데로 차가 한 대 지나갈 수 있다. 두 대가 한 번에 지나치기엔 빠듯하다. 차고가 있어도 대개 집 밖에 차들을 세우므로 길이 여유롭지 않다. 어떤 이들은 너무 높은 지역이어서 어지럽다고 하나 미국인들은 view(전망)가 좋다고 선호하는 지역이다. 집 창문으로 Hollywood라는 빅 싸인이 보이는 것을 이 동네 사람들은 자랑거리로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 구역예배라도 모일라치면 교인들은 미리 차를 정비해야 그 동네의 언덕길을 올라갈 수 있다는 둥, 또는 바퀴 밑에 고일 벽돌을 준비하라는 둥의 조크를 한다. 한적한 동네여서 그런 일은 많지 않지만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차와 내려가는 차가 길 한복판에서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다. 이 동네에 오래 산 사람들은 언덕길의 교통법규를 잘 알므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길을 잘 못 들어온 사람이거나 평지에 사는 사람들은 그 rule을 모르는 이가 많다.
언덕길에서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차가 통행우선권(right of way)이 있다. 그러므로 위에서 내려가던 차는 옆 갓길로 바짝 붙어 주어야 한다. 이 동네에 처음 이사 와서는 그런 법규가 있다는 걸 몰랐기에 무례하게 저지른 실수가 많았는가 보다. 어느 날 옆집의 잭 할아버지와 길 한복판에서 만났는데 할아버지가 차를 세우더니, 나 보고도 내리라며 손짓을 한다. 그러더니 길 한가운데서 설명을 하신다. "조앤…너는 right of way를 모르는 사람"이란다. 그런 말을 여러 번 들었다며 잭이 안타까워 귀띔을 해주는 거였다. 모두들 언덕길에서 만나면 다 내가 하는 대로 웃으며 양보를 해 주었기에 나는 내 원하는 대로 다녔었다.
이웃들 눈에 ‘오리엔탈 싸가지'로 비쳤을 나를 생각하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sorry” 를 연발하면서도 어찌나 입맛이 쓰고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그 이후 right of way를 어기는 그런 실수는 절대 안 하겠다 작정하고 살았다.
언덕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구비가 한차례 있으므로 때에 맞춰 순발력을 발휘해야 무식을 면하게 된다. 오름 차례와 내림 차례에 따라 우선권이 달라지니 말이다. 또한 언덕길을 내려가 동네 어귀의 4 way stop 싸인에서도 양보는 계속된다. 네 방향에서 오는 차가 동시에 서게 되면 서로 기다려주며 먼저 가라는 바람에 오히려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망정 서로에게 고맙다고 손을 흔들어주며 지나가는 것은 기본 매너이다. 이것도 상식적인 right of way에 속하는 것이다.
네거리를 지나 프리웨이를 진입할 때 대개의 미국인들은 하이 빔을 한번 깜박이며 양보의 표현을 해준다. 한국에서는 하이 빔을 켜면서 내가 먼저 지나가겠다는 경고를 하는데 비해서 그 반대의 뜻을 가진 이 표시는 한동안 한국에서 온 운전자를 헷갈리게 한다. 이곳에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오래전 엘에이의 외곽도시 부에나팍(Buena Park)의 한 거리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힙합 의상으로 위장한 한 경관이 어슬렁대며 무단횡단을 하였다. 차들은 서기도 하고 피해 가기도 했다. 그때 경관들이 법규를 어긴 차들에게는 티켓을 떼고, 지킨 차들에는 $20불 상당의 기념품을 선물했다. 비록 횡단보도가 아닌 길로 건너갔다 하더라도 교통법규엔 보행자 우선이라는 정신이 들어있기에 행인을 중시한 이들에게 기념품이 주어진 것이다.
나는 이 right of way 가 인생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가만 보면 이것은 법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한다. 법 이전에 사람에 대한 사랑이 깔려있을 때, 그 법의 완성이 있지 않을까. ‘서로 양보하는 것 외에 인생이 사회에서 존속할 방법은 없다' 고 철학자 Samuel Johnson 은 말했다던가? 매일 지나는 길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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