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와 분수
오래전 우리가 미국에 와서 구입한 첫 차는 1976년도형 올스모빌 델타88 이었다. 85년에 샀으니 이미 남이 10년 동안 타고 다닌 중고차를 산 것이다. 8기통의 기름을 하마처럼 먹는 탱크 같은 차였다. 크기도 크고 소리도 요란한 하늘색의 긴 세단을 그 당시 700불을 주고 샀다.
미국이 오일쇼크일 때여서 기름을 많이 먹는 차는 환영을 받지 못할 때였다. 그때의 유학생들의 차가 다 거기서 거기였으므로 별로 창피하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자 남편은 모터 싸이클을 마련해 그걸 타고 학교를 다녔으므로, 나와 아이의 전용차 격인 그 차로 Austin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운전 초기,큰 차의 운전이 서툴었던 나는 다니던 미국 교회의 주차장에서 아주 작고 허름한 차를 박았는데 주인이 없기에 메모를 적어두었다.
전화번호와 이름과 주소를 적고 연락하라고. 작은 차 옆의 새 캐딜락엔 피해를 안 주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교회로 전화를 해 보았다. 상황을 말하자 전화를 받는 이가 말하길 다 알고 있다고 한다. 웃으며 그 작은 차가 자신의 차라며 자기는 pastor ㅇㅇㅇ이라는데, 맙소사 그 큰 미국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고물차여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며 드라이브할 수 있으니 안 고친다며 염려 말란다.
연락을 안 해 우리의 걱정이 더 했나 보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놀랐다. 우리보다 낡은 차여서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상상외여서.
후에 인사하러 가보니 새 캐딜락은 뜻밖에도 교회를 청소하는 이의 차였다. 열린 트렁크에 청소용품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여러 군데를 다니며 청소를 하는 모양인지 바빠 보였다. 그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연봉이 목사보다 더 높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지는 물건에 실력 이상의 돈을 쓰거나 허세를 부리는 이는 자격지심의 표현일는지 모른다. 청소업에는 세단 보단 트럭같은 실용차가 적당할 듯 한데말이다.
어느 추한 단체장의 웃지 못할 이야기이다. 한인타운에서 제법 알려진 단체장이 타고 다니던 벤츠 500이 고장이 나서 아는 장로님 댁 정비소에 맡겨졌다. 보통 벤츠같이 고급 차를 타는 이들은 일반 정비소에 안 맡기고 딜러의 서비스를 받건만 어찌 된 일인지 일반 정비소로 가지고 왔단다. 큰 문제가 아닌 간단한 부품만 갈아 끼우면 되는 것이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정비소에선 파트를 주문하였다.
주문한 파트를 끼웠는데도 잘 안되어 몇 차례 부품이 불량 인가하여 바꿔오고 하니 자존심이 있는 벤츠 부품센터에서 사람이 직접 나왔다. 벤츠 부품센터의 사람이 보더니 이 차는 벤츠 모델 500이 아니라 모델 320이라고 했단다. 그러니 부품이 안 맞은 것이라고. 벤츠의 등급을 올리려 겉의 숫자를 바꾸었다는 이야기인데, 남들의 눈을 의식한 얼마나 유치한 짓인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 단체장으로 한인을 대표한다고 다니면, 하는 짓은 안 봐도 알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돈만 벌면 다라는 사람들은 세상에는 돈 이외의 질서가 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돈을 못 번 사람의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도 큰 부자가 못된 것이 억울하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게 맞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축소판 격인 나성에 살다 보니 조국의 세태를 대강 알 수가 있다. 유학을 시킨다고 해서 과연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한국의 돈 많은 어떤 이는 이곳의 유학생의 실태가 겁이 난다며, 대학에 낙방한 자신의 아이를 맡아주면 큰돈으로 보상하겠다고 기별이 왔다. 물론 그 돈을 생각하면 유혹적이나, 아이를 맡는다는 것은 그 아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따르는 것이니 거절하였다. 심사숙고하여 내게 부탁하였다는 말은 고맙지 않았다. 부모가 못 거두는 아이를 뉘라서 잘 거둘 것인가?
“나는 간소하면서 아무 허세도 없는 생활이야 말로 모든 사람에게 최상의 것. 육체를 위해서나 정신을 위해서나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산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선생이 새삼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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