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집
뒷마당에 대추를 따러나간 남편이 한 소쿠리의 대추 위에 감나무 한 가지를 잘라 얹어 가지고 들어 왔다. 주홍빛 감이 아니어서 익지도 않은 감을 왜 따왔냐 했더니, 선홍색이 아니라도 달기에 단감이라고 한다나?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남편에게도 깎아 진상하지 않는다. 남편이 자기가 먹느라 깎으면 한 조각 옆에서 얻어먹을 뿐이다. 남편은 모든 과일을 한번 씻어 껍질째 먹건만, 자기가 농사지은 감에 내가 별 관심을 갖지 않자 잘 깎아서 가지런히 늘어놓고 먹어보라고 한다. 생각보다 맛이 들어 달콤했다.
사과, 배, 귤, 레몬, 오렌지, 살구, 복숭아, 넥타린, 자두, 무화과, 대추, 과바, 아보카도, 파파야, 감, 포도, 모과, 앵두, 그레이프 프룻, 낑깡, 드래건 프룻, 파인애플, 오디, 석류. 우리 집 미니 과수원엔 24 종류의 과일나무가 있다. 전문성은 없는 이민자들의 멜팅팟 같은 과수원이다.
어릴 때 경남 진주의 외곽인 사천군 사남면 화전리에서 살면서 소꼴도 먹이고 소죽도 끓이던 남편이 미국에 와서 과수원을 하며 농사 흉내를 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농사라곤 모르던 내가 남편과 짝이 되어 농부 마누라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상추, 시금치, 깻잎,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 고추, 파, 부추, 딸기를 자급자족하며 산다. 신기하기만 하다. 각종 소쿠리가 즐비한 우리 집. 손님들은 오시면 바구니 챙겨 들고 뭐라도 따가신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어제 따올라온 대추는 잘 씻어서 의좋은 부부처럼 앉아, 금방 먹을 것과 쭈글 하여 말려야 할 것을 분류했다. 아삭한 대추는 교회로 가져가 온 교우들과 나눠먹었다. 나누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9월과 10월 감과 석류를 마지막으로 나누면 우리 집 과수원은 겨울을 맞는다. 겨울이 되면 우리 집 과일이 마감되는 걸 알고 교우들은 저마다 다른 간식거리를 챙겨 오신다. 우리 구역이 일 년 내 먹거리가 풍성한 이유이다.
지금 우리 집에선 과바 와인과 무화과 와인이 술독에서 익고 있다. 취하지 말라 하셨으니 교우들과는 입술을 축이는 정도만 나눌 생각이다.
#대추#감#무화과#guava#도심속#미니농장#los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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