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이 아침에] 정리의 ‘달인‘이 다녀가다/이정아

Joanne 1 2016. 7. 7. 23:52




[ 아침에] 정리의달인 다녀가다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7.06.16 22:58


여행으로 집을 비우면서 전체를 터마이트했다. 딴엔 머리를 쓴다고 여행기간을 이용하여 소독을 것이다. 


아들아이에게 부탁하고 여행을 다녀왔는데 집안에 들어서자 펼쳐진 광경이 놀랍다. 부엌의 수납장과 냉장고의 음식들을 세겹의 투명 비닐포장을 하여 바닥에 늘어놓은 바위만한 20개의 덩어리. 냉장고엔 젖은 음식 다섯 뭉치가 들어있다. 그걸 다시 원위치할 생각을 하니 난감했다. 필요없는 버리고 살라며 비닐 포장만 하는데도 두시간 걸렸다고 아들이 투덜댄다. 내외 살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정도의 많은 양이었다. 남편도 "미러클!" 하면서 기막혀한다. 


체력이 달려서 하루에 뭉치씩 정리하면서 보물찾기 하는 중이다. "이런 것도 있었네" 하면서 숨어있던 식재료를 찾는 재미. 친구가 뉴델리에서 사온 강황가루, 파리에서 사다준 소금도 찾아냈다. 깊숙이 있던 꿀도 볶은 흑임자가루도 찾았다. 말린 인삼 상자 찾고는 "심봤다!" 하고 외쳤다. 우엉차, 고춧가루 친정어머니의 정성이, 친지들의 사랑이 담긴 것들이 이참에 빛을 보게 되었다. 


정리가 끝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친구가 왔다. 구원의 손길을 펼쳐 나머지를 모두 정리해 수납해주고 찌든 때가 묻은 그릇들까지 광나게 닦아주었다. 45 동안 출장가사 도우미처럼 청소만 하다 친구 때문에 집안이 반짝반짝하다. 미안해서 모르는 내게, 아픈 사람을 도와준 기쁨이 컸다는 친구가 존경스럽다. 정리의 달인인 친구는 버리는 정리라며 대신 많이 버려주었다. 내가 했으면 망설이다 버리지 못했을 것들이다. 조기은퇴한 치과의사인 친구는 클로락스를 이용했다. 신경치료할 희석한 클로락스를 쓰면 소독효과가 좋았다며 모든 그릇의 묵은 때를 그걸로 닦아냈다. 놀랍게 닦인다.  


생선과 손님은 3일이 지나면 냄새난다는 말이 있다. 여름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속담도 있다. 며칠 후엔 사촌이 온다 하고, 다음주엔 조카가 온다. 휴가철 여름손님 리스트가 속속 들어온다. 부쩍 더워진 LA 날씨 때문에 에어컨도 새로 달고 친구 덕에 청소를 마쳤으니 누가 와도 무섭지 않다. 오라 오라 여름손님들이여. 


우리집에 여고동창 '디어 마이 프렌드' 오히려 향긋한 사랑의 냄새를 남기고 갔다. 고맙다 친구야, 아파서 한국에 있을 때도 빚을 잔뜩 졌는데 나는 언제나 신세만 지는구나, 너처럼 향기로운 땀을 생전에 흘릴 있을까 싶지만 나도 남을 위해 그렇게 되어보길 소원한다. 


28 동안 집에 살면서 묵힌 때를 친구의 도움으로 벗기고 정리했다. 나의 생애를 중간 점검한 개운하다. 


깨끗해진 집안에 맞춰 영혼도 청소해야겠다. 작열하는 태양광선으로 속속들이 소독하여 깨끗이 빨아 널어야겠다. 푸새를 기다리는 이불 홑청처럼 하얗게 표백되고싶다. 


친구가 남긴 희미한 클로락스 냄새조차 상쾌한 여름이다.



출처 : 국제 PEN 한국본부 미주 서부지역위원회
글쓴이 : 이정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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