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 아침에] 광복절의 여운

Joanne 1 2016. 8. 18. 23:27





광복절을 앞둔 지난 주말 애국가와 광복절 노래를 열번도 넘게 불렀다. 12일 금요일 저녁 우리집에 울려퍼진 노래의 사연인즉, 13일로 날짜가 잡힌 광복절 기념 테니스 대회에서 행사 음악의 반주를 약속한 탓이다. 행사 책임자인 선배의 부탁을 감당하느라 생긴 해프닝이었다.

트럼펫 주자가 연주할 때 컴퓨터 반주를 담당하기로 한 남편이 연습삼아 여러번 음악을 틀어본다. 반주를 듣다보니 내 목청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 애국가는 물론이고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광복절 노래인 정인보 선생의 가사가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신기했다. 어린 시절의 입력이 평생을 가나보다.

14일 주일엔 예배후 애국가를 전 교인이 합창했다. 외지에서의 애국가는 늘 울컥한다.

15일 광복절 당일엔 피오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에서 지구본을 기증받는 행사를 주관했다. 한인 사업가가 기증한 대형지구본이다. 시중의 지구본은 70% 이상이 동해를 'Sea of Japan'으로 표기하는 데 반해 김 사장님이 기증한 이태리산 조폴리(Zoffoli) 지구본은 유일하게 'East Sea'로 단독 표기된 것이다. 반가운 나머지 여러 공공기관에 기증하는 뜻 깊은 일을 하신다.

우리 도서관은 대형 지구본과 어린이 섹션용 작은 것을 기증받았다.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에 'East Sea'라고 써있다. 애국가의 가사 "동해물과 백두산"의 그 동해가 아닌가? 당연함이 새롭고 대견했다.

지구본회사 조폴리 지오그래피카의 3대째 사장 조폴리씨는 일본정부의 압력을 수차례 받았어도 동해 단독표기를 고수한단다. 1910년에 만들어진 고지도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정확성을 자신한다고 했다. 일제가 미처 손 쓰기 전의 일일 것이다. 식민지화 하면서 그 영향력으로 일본해로 바뀐 것이라는 분석을 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광복 71주년 해방의 기쁨 뒤엔 1910년의 경술국치, 한일강제병합의 치욕과 잃어버린 역사가 들어있다.

독도니 위안부 문제니 왜곡의 잔재를 가려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 하루하루를 사는 건 미분이지만 쌓아둔 치욕의 역사 청산 문제는 좀 더 어려운 적분일 터이다. 과거를 추억하는 낭만보다는 올바른 역사관으로 깨어 있어야 할 때이다.

항일자금을 대다가 독립을 못 보고 돌아가신 김순권선생(이웃인 잭 할아버지와 김영옥 대령의 부친)께 올해의 광복절에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다. 광복절 노래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에 나온, 간절히 독립을 기다린 한 어른님일 것이다. 한참 늦었지만 기쁜 일이다.

올 해의 광복절, 내 생애 가장 광복절다운 광복절을 보냈다. 애국가도, 광복의 노래도 후련히 불렀다. 대한민국의 앞날도 후련했으면 좋겠다.



[이 아침에] 미주 중앙일보  이정아/수필가
                                         기사입력 2016/08/17 2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