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무엇인지
작년 2017년 7월 5일자 미주 중앙일보에 기고한 한 편의 글로 난감한 상황에 놓인 일이 있다. 내 글에 K 사이버대를 폄하한 내용이 있다며, 그 사이버 대학 미주동문회 이름으로 나를 성토한 광고가 이곳 양대 일간지에 실렸었다. 황당했다. (슬프게도 주동자는 그 사이버대 출신 같은 업종? 문인이다)
그 학교를 특정하지도 않았고 사이버대를 흉보지도 않았건만, 문예창작을 공부한다면서 1500자 정도의 단문에 대한 독해력도 없다니 속상한 한편 측은지심이 들었다. 나를 비난하는 신문광고 글은 얼마나 유치한지 이곳 문인의 수준이 다 드러나 부끄러웠다. 개인적 감정을 추스르지못해 신문광고로 망신주려던 의도가 보였다.
마침 한국에서 하계 문학 세미나 강사로 오셨던 시인과 평론가들이, 내게로 퍼부은 온갖 악플의 카톡과 신문광고까지 다 보시더니 절대 상대하지말라며 조언을 하셨다. 필화는 가만두면 제 풀에 사그러든다며 한국도 허다한 일이긴 한데 못된 것만 배운 이곳 문단에 혀를 차셨다. 광고비로 돈 쓰고 누워 침뱉기 한 셈이 아닌가? 나도 망신살이 뻗쳤지만 서로에게 이롭지않은 행위였다.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며 나를 되돌아 보게되었다. 모르는 사이 남에게 밉게보인 적이 많았나 보다. 무의식적으로 남의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에 손상을 입혔는지 모른다. 교회나 문인 모임처럼 여럿이 만나는 자리일수록 더욱 조심히 살아야겠다.
바하마 여행 중에 읽은 책 아들러의 심리학에 보면 보통 10명중 두명 과는 마음이 통하며, 하나는 미워하고 물론 나도 상대를 미워하며, 7명은 내가 무얼하든 아예 관심조차 없단다. 나를 좋아하는 이들과의 행복한 시간 나누기도 모자란데 쓸데없는데 세월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모든이에게 사랑 받으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미움받을 용기' 가 특히 내게 필요했다. 미우면 미운대로 내버려두니 세월이 약인 모양인지,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허둥지둥 앞만보고 사느라 옆을 돌아 보지못했다. 남은 생은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상대에게 유익을 주는 평화의 도구로 쓰여지길 원한다. 사람답게 살기도 어려운데 그에 더해 문인 답게 살아야 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지싶다.
# 경희사이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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