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혼자만의 화해/이정아

Joanne 1 2018. 10. 4. 18:35


 

salad

city of Compton

 

혼자만의 화해

 

다인종이 모여 사는 이곳 나성은, 최근의 통계를 보면 140개 나라에서 온 96가지의 다른 언어의 사람들이 섞여 살고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을 부를 땐 멜팅 팟(Melting Pot)이니,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니 하고 부른다. 멜팅 팟은 여러 인종이 뒤섞여 산다는 의미로, 샐러드 보울은 뒤섞여 사나 각 민족의 고유성은 살아있다는 의미로 말할 때 많이 사용된다.

 

작은 규모의 우리 회사만 해도 사무실 비서는 인도 사람, 현장 매니저는 멕시코사람과 한국사람이 섞여있다. 현장 작업을 맡은 인부들은 멕시코나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주로 남미계통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직원 중 흑인은 아직 없다.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흑인들 이건만. 이쪽에서 흑인을 부르는 정식명칭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다.


우리 동양계를 아시안 아메리칸 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사람들 중 그들을 지칭할 때 정식이름인 '아프리칸 아메리칸' 이라고 하는 이는 없다. '킨타쿤테' 또는'니그로' '검둥이' 이렇게 대개 비하의 뜻을 담아 부르는 이가 많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색깔로 구별하기도 한다. 블랙이니, 옐로, 화이트 이러기도 하고, 스테이크에 비유해 Rare(덜 익은 것), Medium(중간 것), Well-done(잘 익은 것), Over heated(탄 것) 이러기도 하는데 우스운 것은 서로 '웰 던'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항상 자신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법이므로.

 

30년전 엘에이로 이사와서 집을 사려고 돌아 다녔었다. 그때 먼저 이곳에 와 정착한 선배들의 조언에 의하면 한인타운에 있는 집은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인들끼리 집 값을 올려놓아 규모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신문인 L.A times 의 부동산 광고를 믿기로 하였다. '좋은 이웃, 저렴한 집 값' 가보면 흑인 에이전트가 파는 흑인동네의 집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볼 땐 서로가 좋은 이웃인 셈이니 몇 번 가서 본 집들이 우리가 가장 하얀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쑥스러운 동네여서 곤란했던 적이 있다. 사실은 흑인들이 싫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나 그들을 보면 우선 무섭다. 그러한 선입견으로 사람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고질적인 오해는 체험을 통하지 않으면 고치기가 어렵다.


흑인 동네의 주유소에서 개스를 넣을 일이 생겼다. 되도록 그곳을 피하여 개스를 넣으나 어쩔 수 없이 넣게 되었다. 주유를 하고 시동을 거니 차가 스타트가 안 된다. 어쩌나 교회의 부흥회는 시작이 될 것이고 맡은 순서도 있고 마음은 초조했다. Road Service를 불러도 가고 오는데 적잖이 시간이 들 터였다. 흑인 한 명이 내게로 걸어왔다. 머리가 쭈뼛 서면서 긴장했다. "도와 줄일 있냐?" 묻는다. 그래도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살펴보았다. "네 차 소리 들어보니 배터리가 문제"라고 한다. 그러더니 자기 차에서 점프 케이블을 가져다가 내 차로 연결하여 시동을 걸어주는 것이 아닌가? 임시변통만 했으니 네거리에 있는 정비소에 가서 배터리를 갈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해 주었다.


내게 눈을 찡긋하면서 "내 차는 낡아서 점프케이블을 늘 갖고 다닌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수고비를 주려해도 안 받고 어서 가보라고 손을 흔든다. 내가 평소에 이유 없이 싫어했던 흑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흑인 폭동 때 보았던 난폭한 이의 모습이 아니고 굵은 금 목걸이에 힙합 바지로 온 거리를 쓸고 다니는 불량해 보이는 흑인도 아닌, 어리숙한 흑인이 내 편견 있는 안목에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깨우쳐주었다.


그 이후 흑인들을 관찰해보니 나의 사고와 생각이 참으로 바르지 못했음을 알았다. 외모 때문에 배경 때문에 차별하고 사는 일은 없는지, 그런 편견이 공동체 사회에서 남에게 불이익을 주고있지는 않은지 곰곰 하게 생각해 볼일이다. 조건을 뛰어넘어 인간을 인간자체로만 사랑하는 회복이 우리에게 있어야하지 않을까?


오늘, 회사 일 때문에 L.A 외곽에 위치한 City of Compton 캄톤 시청으로 도면을 픽업하러 갔다. 캄톤은 대표적인 흑인도시 이다. 길거리의 사람도 시청의 수위도 직원도 손님들도 다 검은 곳이었다. 캄톤시에 있는 학교공사를 새로 들어가게 계약이 되었다. 그 동네 거주자를 적어도 몇 명은 꼭 써야한다는 규정이 도시마다 있으니, 조만간 그 공사를 위해 흑인 직원을 채용해야 할 것이다. 내가 먼저 "하이"하고 인사하니 다들 흰 이빨을 보이며 더 크게 웃으면서 반겨준다. 오호라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여태껏 내가 문제였구나.

 

#한국수필 10월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