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노인대학 조기 입학생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11.29 18:53 수정 2022.11.29 19:53
이정아/수필가
한국에 여고 졸업 60주년 기념행사에 다녀오신 선배님이 한숨을 푹 쉬며 말씀하신다.
“팬데믹 전만 해도 단체로 옷 맞춰 입고 라인댄스에 연극도 했었는데 양상이 달라졌어. 그 사이 하늘나라 간 친구들이 여럿, 휠체어 탄 친구가 셋, 지팡이를 짚은 친구가 둘이더라고.” 하며 우울해하신다. 나보다 13년 선배시니 팔순에 가까운 선배님들이긴 하다. 몇 년 전 3박 4일로 남해 리조트 빌려 놀던 프로그램은 없어지고, 점심시간에 만나 밥만 먹고 조용히 헤어지는 것으로 바뀌어 큰돈 들여 한국 나간 것이 아깝더라 하신다. 100세 시대니 뭐니 해서 영원히 살 것 같아도 끝은 있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렇다 페이스북 친구로 오래 알던 캐나다의 소설가 J선생님도 뉴욕의 시인 H선배도 와병이후의 소식이 궁금해 가보니 부고가 올라와 있어 덜컹했다. 모두 이른 나이에 소천을 받은 것이다. 내 나이와 비교해보니 머지않아서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평안하다던데 왜 나는 두려운 것일까? 가족과의 이별, 사랑하던 모든 것과의 단절이 슬퍼서일 것이다.
지난가을부터 두 곳의 학교에 등록하여 다니기 시작했다. 큰 수술 후 백수로 산 지 여러 해, 삶에 자극이 필요했다. 클래식 음악 동아리는 가보니 노년층이 대부분이라 약간 실망했다. 내 발로 노인학교에 찾아간 셈이니. 그래도 좋아하는 취미여서 열심히 다니는 중이다. 입을 크게 벌려 노래하면 안면근육도 풀려 노화방지에 좋다니 믿어보기로 한다. 마음을 정화해주는 고전 음악 감상도 참 좋다. 오시는 분들이 모두 건강한 노년들이라 선한 영향을 받는 건전 모임이다.
다른 한 곳은 노인 성경대학이다. ‘노인’이 붙어 주저했으나 65세 이상이면 등록을 권한다기에 가보니 가장 어린 학생이 되었다. 성경공부에 이은 한글 퍼즐 맞추기 시간과 색칠하기가 유치원 수준이라 자존심 상하긴 해도 어느덧 종강하게 되었다. 노인대학이라 성경공부도 죽음과 종말론 사후세계에 관한 내용이다. 그만큼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사실 매일 산다는 것은 죽음 쪽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65세 되면서 연금 나오고 메디케어 의료 혜택을 받게 되니 큰돈 번듯 좋았다. 그러나 바로 호칭에 ‘시니어, 어르신, 노인’ 이 붙게 되어 갑자기 늙어버린 억울함도 있었다.
어차피 가야 할 길, 조기 입학한 셈 치니 그럭저럭 가을학기 졸업식을 맞았다. 졸업식에 대표로 나가 졸업장 대신 졸업 선물을 받았다. 코스트코의 대용량 식물성 식용유 였다. 이런 실용적인 졸업 선물 이라니. “노인대학 만세! 브라보 시니어 라이프!” 종이 졸업장 보다 훨씬 좋았다.
아직도 물질에 열광하는 나. 철들려면 아직 멀었다. 봄 학기도 등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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