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이 아침에]귀가 `순해지는` 나이/이정아

Joanne 1 2016. 1. 13. 23:19







[이 아침에]귀가 '순해지는' 나이

                                                                        수필가 이정아



가족들과 생일 축하 저녁을 먹고, 다음날 생일기념 5박6일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100세 시대엔 잔치도 안하는 생일된 지 오래지만 아프다가 회복한 것을 환영하며 아들과 남편이 만든 이벤트였다. 남편은 눈치없게 생일 감사헌금 봉투에 그 숫자를 적었다. 이 나이까지 산 게 기적같아서 라며. 그거야 사경을 헤맬 때 이야기이지 그래도 여자 나이 아닌가. 내 나이가 만천하에 공개된 불운(?)한 날이었다.

미국의 최남단 플로리다의 키웨스트를 돌아보고 바하마의 낫소를 거쳐 미국의 베니스라는 포트 로더데일로 귀환하는 캐리비안 크루즈 여정이다. 정작 기를 받아오리라던 헤밍웨이 생가와 뮤지엄에선 별 감흥이 없었다. 헤밍웨이가 고작 62세까지 살았다기에 오히려 가슴이 철렁했다. '노 크레딧 카드'라고 쓰인 헤밍웨이 박물관 사인판은 야박해보였다. '캐시 온리'의 투고 음식점 같은 기분이랄까. 생가 앞 길의 쿠바 태생 거리화가가 그린 강렬한 아크릴화와 뮤지엄 옆 '6 toed cat cafe'가 더 기억에 남는다. 헤밍웨이의 애완 고양이가 6발가락이어서 카페이름을 그리 지었나 보다.

키웨스트 거리엔 비둘기보다 닭이 많았다. 쿠바 이민자가 투계용으로 키우다, 투계도박이 금지되자 자유를 얻은 닭들이 거리를 능청스럽게 돌아다닌다. 온 동네의 시니어들은 관광객을 태운 버스의 기사와 안내원으로 재취업 하는듯 보였다.

바닷길을 돌아 이틀 걸려 700여개의 섬인 바하마 군도의 초입 낫소에 도착했다. 90%가 바하미언이라는 흑인이다. 콜럼버스가 발견하곤 인도인 줄 알았다나? 영국령이었기에 지금도 영국의 공휴일과 제도를 따른다. 판사와 변호사는 법정에서 흰 가발과 영국식 가운을 착용하는 전통을 아직 지킨단다. 해적들의 기지, 노예매매의 큰 시장, 아편 밀매 등 주로 검은 일을 담당하던 역사가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세계적인 돈 세탁 시장으로 각광을 받는다는 가이드의 자랑에 웃고 말았다.

자본주의가 유입되어 카지노, 리조트, 어마어마한 명품거리와 보석상이 있었다.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한 유명인의 별장이 즐비했다. 재처럼 고운 백사장과 물고기가 훤히 보이는 투명 바다의 파라다이스는 거대한 포크레인으로 어지럽다. 바하마는 지금 공사 중이다.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책 두 권을 챙겨갔다. 김영하 소설가의 강연을 옮긴 '말하다'와 일본작가가 아들러 심리학을 청년과 철학자의 질의 응답으로 푼 '미움받을 용기'이다. 두 책 다 대화를 쓴 것이어서 말을 읽은 셈이다.

올해의 생일을 공자님은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말과 연관된 두 책을 여행 중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귀가 순해지는 건 남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보는 건 나를 위해서지만 듣는 건 나와 너의 소통을 위해서이니 우리를 위한 것이다. 더 낮은 자세로 상대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이순을 맞은 이의 합당한 태도일 것이다.

헐! 내가 원하지도 않는 육십이 되어버렸다.




미주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1/12 00:39 

 

출처 : 국제 PEN 한국본부 미주 서부지역위원회
글쓴이 : 이정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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