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수필가
어항에 낀 이끼를 닦으려고 철수세미로 세게 문지른 탓에 이음새가 상했는지 물이 조금씩 새기 시작했다. 받침대로 흐른 물이 현관을 적시고 장식장 속으로 스며들어 며칠 째 곰팡이 냄새가 난다. 깨끗이 청소하려다 사고를 친 아저씨는 붕어처럼 말이 없고 옆에서 구경만 한 아줌마는 까치처럼 시끄럽게 잔소리를 해댄다. 남대문을 본 떠 목조 지붕까지 얹은 집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물을 가두지 못하는 어항은 아무리 근사해도 물고기의 생명을 보전하지 못하므로 15년 넘게 산 보금자리를 철거했다.
아저씨는 더 넓은 세상에 살게 하자며 앞 마당에 수조를 만들어 이사를 시켰다. 작은 수조지만 어항에 비하랴. 5배는 더 넓어진 집이 좋아서 금붕어들은 이리저리 활발하다. 구경만해도 벅찰 지경이다. 웬 열! 난파선에서 건진듯한 보물함도, 시골집 물레방아도 들어오고 커다란 조개껍데기와 고동도 인테리어로 자리잡았다. 띄워놓은 부레옥잠에 보랏빛 꽃이 피니 운치도 있다. 새로 생긴 연못을 들여다보면서 모처럼 주인 내외는 맘이 맞았다. 의자를 놓고 앉아 흐뭇한 웃음을 연신 날린다.
새 집으로 옮기고 즐거웠는데 붕어의 행복은 잠시였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1주일 행복해지고 싶거든 결혼을 하라. 1개월 정도라면 말(馬)을 사고, 1년이라면 새 집을 지어라. 그런데 평생토록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정직한 인간이 되라." 요즘은 이렇게도 바꾸어 말한단다. "맛있는 밥을 먹으면 하루가 행복하고, 새 휴대폰을 사면 일주일이 행복하며, 새 차를 사면 한 달이 행복하고, 새 집을 사면 일 년이 행복하다."
어느날 비친 검은 그림자는 새 집 일 년의 행복도 채우기 전에 다가왔다. 날이 추워 부레옥잠이 꽃 피우기를 그친 겨울 저녁, 검정 얼굴을 흰 마스크로 반쯤 가린 듯한 능글한 놈이 줄무늬 꼬리를 엉덩이 사이로 감춘 채 연못 가장자리에 올라가 물 속을 노리는 중이었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라쿤이다. "훠이" 소리질러 쫓았는데, 다음날 아침 가장 큰 붕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틀 뒤엔 검정붕어가, 그 다음날은 팔뚝만큼 자란 이끼헌터 두 마리가 실종되었다. 갈수록 대담해져 붉은 비늘을 연못 가까이에 남기고 파파야 나무 밑에도 흔적을 남겼다. 연못은 초토화되고 붕어를 자식처럼 아끼던 아저씨는 한숨만 쉰다.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귀하자 식량 구하던 라쿤이 '심봤다'한 셈인가. 쫓는 약을 뿌려도 소용없고 철망을 치려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금붕어들을 라쿤의 먹이로 다 뺏겨버렸다. 15년 넘게 들인 공은 라쿤의 일주일치 식량일 뿐이었다. 미물이어도 '우리집 금붕어'이기에 키운 정 때문에 죽음은 슬펐다. 불쌍하고 허무했다.
전도자의 말이 생각났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세상의 진리를 인간의 죽음도 아닌, 하찮은 금붕어의 죽음을 통해 떠올렸다면 너무 유치하다 할 것인가?
외출할 때 현관을 나서며 금붕어에게 "갔다올게. 집 잘 지켜" 늘 당부하던 말을 이젠 뉘게 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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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1/27 23:02 |
출처 : 국제 PEN 한국본부 미주 서부지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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