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홈리스 음악회에서 흘린 눈물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11.17.16 22:37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로 홈리스의 천국이라는 이곳엔, 날씨가 추워지면 타주에서 이사오는 무숙자가 많아진다. 예전엔 박스 안에서 자는 이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젠 각종 텐트로 울긋불긋 멀리서 보면 캠핑 그룹 같다. 101번 프리웨이의 알바라도 출구의 노숙자는 텐트에 금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별을 장식하고 벌써 크리스마스 준비를 마쳤다. LA시는 노숙자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작년대비 11%가 증가하여 지난 5월의 통계에 의하면 4만7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오래도록 홈리스 선교를 하는 울타리선교회를 방문했다. 이른 추수감사절 예배를 하는데 음악회를 함께 한다고 들었다. 남편의 밴드가 재능기부로 연주를 한다. 그래도 망설였다. 몇 년 전 참석했던 경험이 있기에 말이다. 씻고 왔다 해도 은연 중 배어있는 노숙자들의 퀴퀴한 냄새. 사우스LA 지역의 주차공간도 없는 교회에서 하는 음악회. 매력이 없었다.
겨우 겨우 길가에 주차를 하고 교회에 들어서니 여러 명의 홈리스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출연하는 합창단과 연주자들이 리허설 중인데 미리 자리를 맡아 놓아서 빈자리가 없었다. 홈리스 할아버지 옆에 앉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옆에 앉으니 반갑다고 악수를 청한다. 철 수세미 같은 손을 잡았다. 중간에 허그하라면 어쩔까 지레 걱정했다. 염려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기도합니다"를 여러 번 말하며 하이파이브도 하고 주먹도 부딪치고 허그도 해야 했다. 옆자리의 할아버지는 물론 앞자리의 꼬챙이처럼 마른 여인과도,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목에 단 거구의 아저씨와도 인사했다. 모두 아프리칸 아메리칸이었다.
시니어 목사님은 한국인이어서 한흑동역이 보기 좋았다. 영어가 능숙한 한인 2세, 젊은 초청 목사님은 설교로 홈리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감동을 주셨다. 설교 중간에 "예스! 지저스! 할렐루야!" 홈리스들의 추임새가 뭉클하다. 그 목사님 교회에서 그날의 식사를 모두 감당하셨다. 홈리스와 연주자 모두 배불리 먹고 무숙자들은 여러 끼의 식사분량을 투고해 갔다. 우아한 여성중창에 귀여운 어린이 합창, 경쾌한 밴드의 음악을 따라 부르고 박수로 환호로 몸짓으로 무숙자들은 뜨겁게 반응한다.
설교를 듣고 음악을 듣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남들은 내게 무슨 곡절이 있나 싶었을 것이다. 홈리스를 위한 행사는 내 영혼을 위한 행사 같았다. 그냥 이곳에 내가 앉아 있는 게 은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부끄러웠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노래로 악기로 설교로 바비큐 봉사로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 그런 자리에 숟가락만 얹고 구경하고 밥을 얻어 먹었을 뿐인 나. 참석조차 망설이지 않았던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가장 저급한 삶을 살면서, 고상한 척 산 나의 위선을 반성하고 반성했다. 홈리스는 피할 대상이 아닌 도울 사람들인 걸 한동안 잊고 살았다. 내가 무숙자가 아님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입장인 것을 감사해야겠다. 이른 감사절 예배는 내게 힐링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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