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착한 놈,나쁜 놈, 더 나쁜 놈

Joanne 1 2016. 12. 17. 02:26


놈놈놈 포스터


온화하고 부드럽고 후배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경어를 쓰는 선배가 계셨다. 우리 내외는 존경해마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자리에서 그 선배에 대해 험한 말을 하는 분을 만났다. 듣다 못해 그 분은 좋은 분이라며 편을 드니, 상대방 말이 "답답한 놈은 나쁜 놈보다 더 나쁜 놈"이란다. 그 선배가 낀 동창회나 교회는 사사건건 결론도 못내는 시간낭비를 해야 한다나? 혼자 결정 못하고 싫은 소리도 못하고 우유부단해 주변을 질리게 한다며, 착한지 몰라도 답답하단다.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산다'는 옛 속담이 떠 올랐다. 개인적 만남만 가졌던 우리는 그런 평판은 전혀 몰랐다.

페이스북에서 어느 분이 박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죄없다며 너무 착하고 너무 나약한 것이 죄라면 죄라고 했다. 그러자 "그것이 바로 큰 문제. 한나라의 지도자가 그러면 이리 저리 휘둘려서 의도치 않는 피해를 입히니 안 되지요. 한집안에서도 가장이 너무 착하고 너무 나약하면 죄는 안 지을망정 가족 모두 고생하는 경우 많아요. 요샌 예전과 달리 여자들이 배우자 고를 땐 최악의 조건이 너무 착한 거래요" 하며 여성분이 답글을 달았다. 공감했다.

머리 염색차 부부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들렀다. 30주년 기념 파격세일이어서 갔는데, 다른 손님들은 모두들 10년 넘은 단골 고객이라고 했다. 일 중간 중간 미용사 아내가 사장님 남편을 쥐잡듯 잡는다. 그런 광경을 처음 본 나는 불안하고 무서웠다. 단골들은 이골이 난듯 무심한 채 말리지도 않는다. 염색약을 몇번 써라, 퍼머 아래 두단 미리 빼라. 지시하고 확인하고 미처 못했으면 핀잔주고 소리치고 마치 최순실이다. 남편은 얼이 빠졌는지 초월했는지 묵묵히 지시대로 움직인다. 머리 감겨줄 때 아내분께 넌지시 물었다. "왜 그리 닦달하세요? 착한 분을." "아, 답답해서요."

답답한 것, 착한 것이 순수의 동의어로 칭송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흠이라 할 수 없는 것이 사회라는 관계망 속에선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오늘날 지구촌의 경쟁은 점점 거칠고, 야생의 세계만큼 야수적(野獸的) 싸움이 되고 있다. 

탄핵정국인 한국에 새로운 지도자가 조만간 세워질 것이다. 난세를 리드할 지도자의 덕목으로 무엇을 바라야 할까. 섬김의 리더십의 상징인 교황은 겸손을 큰 덕목으로 삼는다고 한다. 겸손을 뜻하는 영어 단어 'humility'는 라틴어 'humurus'에서 왔다고 한다. 땅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여기서 파생된 말이 인간이란 뜻의 'human being'이다.

겸손은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더 높은 위치로 자신을 끌어올리는 정신적 자질이다. 나의 위치를 낮출수록 상대의 위치가 높아지고 그렇게 치솟은 상대가 다시 더 높은 위치로 나를 올려준다. 시녀를 거느린 이가 아닌 스스로 종이 되어 국민을 섬기려는 분이었으면 좋겠다.

어디쯤 오고 계신가? 땅의 이치를 아는 지도자는?


[이 아침에] 착한 놈,나쁜 놈, 더 나쁜 놈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12.15.16 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