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숍의 aspen trees
나를 버리고 간 두 부자
[이 아침에] 몸살과 게이트사이의 아련한 첫사랑
이정아 / 수필가
[LA중앙일보] 11.30.16 20:12
감기가 폐렴으로 진행중이라며 항생 주사를 놓아준 주치의는, 연휴이니 급한일이 생기면 응급실로 가는 수 밖에 없다고했다. 아들과 남편은 아픈 환자를 두고 감사절 연례행사인 매머드 스키장으로 떠났다.
이젠 크게 섭섭하지도 않고 그들도 그리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도 맞고, 오래 산 남편은 애틋하지 않고 친척같다. 휴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어서 가라고 재촉했다.
적적한 집에 틀어놓은 티비에선 한국의 대통령 게이트 관련 방송이 반복되고 있다. 알 필요 없던 약품 '태반주사, 프로포폴,백옥주사, 비아그라' 등등 몰라도 불편하지 않은 지식들이 공해처럼 귀를 괴롭힌다. 독감주사가 익숙한 내게 지도층의 막장이야기는 화가 났다. 당연하다며 지지했던 것에 대한 배반감이며 무지했던 나에 대한 울분이기도 하다.
티비를 꺼버리고 컴퓨터를 켜길 잘했다. 낯선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내용인즉 "저는 강원도 춘천에 사는 50세 여자입니다. 임진성님을 첫사랑으로 두신 어느 할머님께서 궁금해 하십니다. 북에서 피난 내려와 그 할머님 댁에 머물때 그곳에서 아련한 사랑을 하셨나봅니다. 문득 안부라도 들려드리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찾기 시작했지요. 검색하다가 이정아님을 알게되어..."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밝혀도 괜찮으리라. 임진성은 나의 큰 아버지이시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첫사랑이라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는 아직 생존해계시단다. 소설같은 이야기가 신기하고 첫사랑을 기억하는 그 분의 마음이 따스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이해했다. 동시에 희미한 나의 첫사랑의 그림자도 떠 올려보았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가슴아팠던 속설.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 오랫동안 날 기억해 주길 바라는 이기심. 우연히 라도 마주쳤으면 하던 집착. 나 외의 다른 사람은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등등으로 얼마나 애를 태우던 지나간 날들인가?
이 참에 내 첫사랑도 검색해봤다. 궁금한 이들이 참 많았다. 아마 나를 만났던 모든 이가 나를 첫사랑으로 기억해주길 바라는 속마음이 있었나보다. 요즘사진과 근황을 두루 확인해 본 후 내 첫사랑의 순례를 마감했다. 모두들 나 없이도 잘 살고 잘 늙어가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가 나를 궁금해할까 싶어 인터넷에 뜬 볼품없는 내 사진이 걱정 되었다. 신데렐라주사는 이래서 필요하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이는 시술을 이기지 못함을 안다. 망가져버린 표정없는 여배우들, 불편한 대통령의 얼굴과 이미 성형중독의 기운이 보이는 최순실 에게서배우고 있지 않나. 나이를 거스리려는 것이 덧없으며 민망함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몸살과 게이트 사이에서 아련한 첫사랑이야기가 나를 위로해 준 연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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