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로 선물이 되기로 해요

Joanne 1 2017. 1. 18. 00:42




비가 부슬부슬 오는 아침, 늦잠을 잤다. 손전화기에 메시지가 뜬다. "문앞에 동치미 놓고 갑니다." 현관 앞에 동치미를 담은 가방이 놓여 있다.

오래전 같은 교회에 다녔던 권사님이 비트를 넣어 핑크색 물이 든, 먹기도 아까운 예쁜 물김치를 새벽기도 가시는 길에 살짝 두고 가셨다. 곁들여 넣은 흑마늘은 유기농으로 손수 만드셨다며 하루에 세 조각씩 남편에게 먹이라고 하신다.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쓴 카드도 들어있다. 우렁각시의 선물에 감격했다. 자주 오가는 사이도 아니건만 웬일인가 싶었다. 카드 안에는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의 선물이라며, 은혜로운 글로 이민여성들을 격려해 달라고 쓰셨다. 허접한 일상을 주저리 늘어놓는 글이 힘이 된다니 부끄러웠다. 오히려 내게 큰 위안이 된 편지였다.

나태주 시인이 쓰신 '선물'이라는 글에는 "선물은 착한 마음으로 주고 받는 것을 말한다. 결코 무리한 부탁이나 불편한 일을 빌미삼아 주지 말고 마음으로 주는 물건이다. 더하여 선물은 오로지 무상의 행위이고 그 기쁨이며 허공에 던지는 사랑의 고백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에 쏙 와 닿았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선물은 주는 것이다. 
작년 연말 노숙자의 햄버거 값으로 2000달러를 기부한 분의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LA코리아타운의 작은 분식점을 경영하신다기에, 꼭 그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리라 생각했다. 좋은 일은 하늘이 열배 백배로 갚아준다 했다. 그렇다면 가서 밥을 사먹는 것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소극적인 도움이지 않을까. 친절한 주인장과 인사하고 밥도 먹고 투고도 해왔다. 별거 아니라고 어색해 하시며 웃으신다. 순박하고 진정성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음식도 맛있었다.   

BC 400년 경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제시했다. '먹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재산, 모든 이가 칭찬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외모, 자신의 생각의 절반 정도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기고 두 사람에겐 질 정도의 체력, 연설하면 청중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 등 5가지가 행복의 조건이란다.

결국 행복은 모든 게 채워진 완벽에 있는 게 아니라, 모자란 듯한 결핍에서 온다는 말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주고 나면 손해의 기분이 아니고 오히려 행복해지는 선물의 계산법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다. 베푸는 자만이 알 수 있는 행복의 비밀을 분식점 사장님은 알고 계셨다. 
살다보면 세상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기 마련이다. 건강, 재물, 인간관계 등등의 부족 말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재물의 결핍을 가장 크게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 결핍이 돈의 결핍이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의 결핍을 더 우려할 일이다. 없는 가운데 함께 나누면서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살고픈 새해이다.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 이정아 수필가
 기사입력 2017/01/16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