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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할배

북치는 할배​이정아/수필가​아이가 어릴 때 학예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인‘little drummer boy' 를 불렀다. 그때 소품으로 합창하는 아이들의 드럼을 준비해야 했는데, 엄마들의 아이디어로 캔터키 치킨의 패밀리팩을 사서 그 통을 북 대신 쓴 적이 있다. 치킨 통을 목에 걸고 젓가락으로 북치는 시늉을 하며 "파~람 팜팜 파~" "파~람 팜팜 파~" 노래하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 후로 25년이 흘러 우리집에 북치는 어른이 나타났다. 리틀 드러머가 자라서 어른 드러머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그 아이의 아비인 내 남편이 북을 치니 엄밀히 말하면 '북치는 할배‘인 거다. 교회 성가대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남편이 팀파니를 연주하라는 명을 받았다. ​순종을 잘 하는 남편은 지휘자 목사님의 말씀대로 새해부터..

나의 이야기 2024.12.14

도둑이 들다

[이 아침에] 밤새 안녕하신지?중앙일보 Los Angeles입력 2024.11.25 17:59 수정 2024.11.25 19:00타이페이에 놀러 간 아들아이가 카톡을 했다. 우리 사업장인 야구 연습장에 도둑이 들었다며. 알람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건물 책임자가 아들아이로 되어있어서 여행 중인 아들에게 연락이 간 모양이다.우린 예배 중이어서 교회 마치고 야구연습장으로 향했다. 알람회사의 연락을 받은 경찰은 이미 다녀갔고, 신고서 양식을 두고 갔다. 피해 리스트와 피해액을 자세히 기록하여 제출하라고 한다.가게문을 연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오니 난리도 아니더라며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 연습장 쪽 사무실은 금전등록기를 부수고 동전을 여기저기 흩어놓고 난장판을 만들었다. 건축회사 쪽 사무실도 온갖 서랍은 ..

나의 이야기 2024.11.26

밀당이 필요했던 여행

[이 아침에] [밀당이 필요했던 여행] [Los Angeles]중앙일보 미주판 입력 2024.10.27 16:52 이정아/수필가 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도 호텔방에서 뒹굴며 책만 읽다 오곤 한다. 몸을 움직이는 건 다 노동이라 생각해서 남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고생문이 훤하다"라고 김을 빼는 편이었다. 다리 관절수술을 한 데다 평발이어서 오래 걷질 못하는 불편함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공항에선 휠체어 서비스를 받고, 크루즈 배에선 스쿠터를 빌려 탈 수 있어서 그나마 수월했다. 항구에 정박한 후 선택 관광을 할 땐 보행거리가 짧은 가장 낮은 단계의 옵션을 택해야 한다. 이번 여행은 '무엇을 보지 않을까'를 결정해야 하는 희한한 여행이었다. 나..

나의 이야기 202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