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32

모기향 피운 예식장

[이 아침에]모기향 피운 예식장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3.10.22 18:19 이정아 수필가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셨다. 비싼 항공료를 부담하고 오신 축하사절(?)들께 보답을 해야겠기에 곰곰 생각해봤다. 15박 머무는 손님들을 위해 숙소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에어비앤비를 잡고, 틈틈이 일일 관광은 전문업체에 의뢰했다. 마침 우리 뒷마당에 대추와 감이 풍성히 열려 손님들이 열광했다. 이번 추석에 한국에선 너무 비싸서 못 사 먹은 대추라며 들며 나며 주식처럼 드셨다. 행사 마친 후엔 멕시코 크루즈를 함께 다녀왔다. 4박 5일의 짧은 크루즈여서 말만 멕시코크루즈이지, 멕시코와 미국 국경의 엔세나다만 밟고 오는 멕시코 분위기만 잠시 느끼는 여행이었다. 롱비치항..

나의 이야기 2023.10.24

넉넉한 가난

[이 아침에] 넉넉한 가난 [Los Angeles]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3.07.24 19:02 수정 2023.07.24 19:04 이정아/수필가 30대의 청맹과니로 철없던 아이 엄마와, 50대의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고단한 엄마가 엘에이 ktown의 조그만 교회에서 만나서 함께 성가대도 하고 식당봉사도 하며 가까이 지냈다. 다운타운 봉제공장에서 재단일을 하셨던 50대의 권사님은 좋은 솜씨로, 한국에서 딸네집에 놀러 오신 내 친정엄마 옷도 만들어주셨다. 그러다가 서로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섬기는 교회가 달라지자 소원해졌다. 살면서 가끔 생각났다. 중고등 학생이던 그 댁의 아이들이 많이 컸겠다 싶기도 하고. 이사하신 댁 정원에 있던 아름드리 아보카도 나무도 궁금했다. 바삐 사는 사이 어느새 33년의 ..

나의 이야기 2023.07.25

사랑의 빚 갚기/이정아

[이 아침에]사랑의 빚 갚기 [Los Angeles]미주판 중앙일보 입력 2023.06.08 20:51 이정아/수필가 시댁 조카의 결혼식이 있어 한국에 다녀왔다. 가기 직전에 받은 병원의 초음파 검사 결과 간에서 꽤 큰 혹이 발견되어 두근두근 벌렁벌렁 불안감에 노심초사했다.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좋은 일로 나가기에 우울한 소식은 감추기로 했으나 이곳의 친지들과 교우들께는 기도 부탁을 해 놓았다. 나는 마치 죽을 날짜 받아놓은 사람처럼 나름 계획을 세웠다. 이번엔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오리라.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니 마지막 만남이라 생각하고,내가 꼭 식사 대접을 하자 생각했다. 그래야 그동안 진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리 쓰는 유서처럼 최후의 만찬처럼 비장한 생각을 했다...

나의 이야기 2023.06.09

몸도 마음도 수선이 필요해/이정아

[이 아침에] 몸도 마음도 수선이 필요해 [Los Angeles] 중앙일보 입력 2023.05.15 18:48 수정 2023.05.15 18:49 남편의 허리가 31인치로 줄었다. 꾸준한 운동과 다이어트의 결과이다. 내 일이었으면 오죽 좋으련만. 아무튼 바지 여섯 장의 수선을 맡겼다. 연변 아주머니인 린다네 수선점이다. 고쳐 입느니 새로 살까도 싶었지만 불경기엔 지출을 안 하는 것이 돈 버는 일이 아닌가? 왕년의 솜씨를 발휘하면 그 수선비도 안 들겠지만 이젠 눈이 어두워 바느질이 어렵고, 하도 많이 해본 옷 수선이어서 지겹기도 하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 돈벌이가 얼터레이션(alteration)이었다. 유학생 남편을 뒷바라지할 때 텍사스 오스틴의 유태인 세탁소 Top Cleaners에서 일감을 받아다..

나의 이야기 2023.05.16

잊지 못할 선물/이정아

잊지 못할 선물 이정아 연애결혼을 한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예물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였다. 동갑끼리의 결혼이었는데, 신랑 쪽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군대도 해결 안 된 상태로 경제력이 전혀 없을 때였다. 그래서 예물을 서로 주고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철없는 두 사람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중대사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두 집안간의 문제라는 것을 안 것은 뒤의 일이었다. 18 K 금반지만을 주고받기로 하였다는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안 그래도 맘에 들지 않는 사위가 보다 보다 별 짓을 다한다고, 머리 싸매고 드러누우셨다. 엄마 친구의 딸 들 중에서 너처럼 그렇게 조건 안 보고 결혼하는 아이는 없다 시며 결혼을 취소하기를 원하셨다.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라도 받아야 혼사를 진행시키겠다고 하셨다..

나의 이야기 2023.05.05

빈방에 누워/이정아

[이 아침에] 빈방에 누워 중앙일보[Los Angeles] 입력 2023.04.18 20:03 수정 2023.04.18 20:05 지난번 큰 비로 방 하나가 못쓰게 되었다. 마루판이 튕겨 올라와서 신발을 신고 들어가 책을 꺼내와야 했다. 공부방으로 쓰던 방이었다. 급하지 않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신경질을 부렸더니만 그제서야 고치기 시작했다. 돈이 안 나오는 공사라며 자기 집은 잘 안 고친다. 다른 공사하다가 남은 자재가 있다기에 그런가보다 했더니 마루판이 아니라 marble(대리석) 판이다. 잠자는 방이 아니니 차가운 돌판 이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고쳐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아는 이 중에 페인트 업을 하는 분이 있는데, 놀러 가 보니 자기 집의 건물 외관을 한 가지 색이 아닌 흰색과 크림색..

나의 이야기 2023.04.19

비극 이후

[열린 광장] [Los Angeles] 중앙일보 입력 2023.03.27 18:33 비극 이후 지난 금요일 교회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J전도사의 추모 모임이 있었다. 예전 중고등부 때 배운 학생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연락하여 100여 명이 모여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음을 실천한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용기가 있어 좋았다. 그가 맡아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네 분의 전문 상담자를 모시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모두들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외상 후의 스트레스 장애(PTSD)가 범죄의 즉각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이었던 우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뇌도 치료..

나의 이야기 2023.03.28

덤을 기념한 여행/이정아

[이 아침에]덤을 기념한 여행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3.01.19 20:37 수정 2023.01.19 21:37 이정아/수필가 2013년 1월에 남편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받았다. 남편의 콩팥을 바로 옆 수술실에서 전달받아 목숨을 건진 일이 이젠 추억이 되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벌써 10년, 당시의 심정으론 일 년만 더 살아도 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덤으로 산 세월이 10년 이라니 기적 같다. 그걸 기념하여 남편이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을 다녀왔다.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선 투석을 받지 않게 되어 삶이 무척 간단해졌지만, 기운도 없고 면역력도 없는 상태로 하루 한 움큼씩 약을 먹는 평생 환자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감사한 일이다. 이승과 저승이 어찌 비교 ..

나의 이야기 2023.01.23

염색 역전/ 이정아

[이 아침에] 염색 역전(逆轉)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12.22 19:08 수정 2022.12.22 20:08 이곳에서는 진작부터 만 나이를 썼기에, 12월의 내 생일이 지나자 한 살을 먹고 내년 5월 남편의 생일까지는 연상녀로 살게 된다. 같은 학번이나 남편이 5개월 늦다. 그 때 까지 누님답게 가르치며 너그러이 봐주면서 살아보겠다. 젊어 보이는 어떠한 인위적인 방법도 거부하는 나는( 실은 무섭다. 주사도 성형도 ), '생긴 대로 살자' 주의이다. 나이 들면 주름은 당연한 것이며, 나이만큼 늙어 보여야 인간적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큰 병으로 병원신세를 오래 지고 나서는 모두들 내 나이보다 더 보는 경향이 있다. 미간에 병고의 흔적인 세로 두 줄의 주름이 결정적으로..

나의 이야기 2022.12.24

이게 다는 아니겠죠?

[이 아침에]이게 다는 아니겠죠? Los Angeles 중앙일보 입력 2022.12.11 18:09 수정 2022.12.11 19:09 이정아/수필가 조카가 딸을 낳았다. 조카사위는 눈이 크고 키도 크고 인물이 좋다. 훈남 아이돌 같다. 조카는 그 반대로 키도 눈도 작은 얌전이. 아기는 누가 봐도 모계로 보인다. 아빠 닮아 눈이 크면 좋으련만 하고 속으로 살짝 아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 할 말 없으니 “귀엽네” 하며 축하 인사했다. 심지어 내 남편은 “장군 같네”라고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딸이다. 우리 집의 4남매는 모두 눈이 크다. 우리 형제들은 친가와 외가가 왕눈이어서 큰 눈엔 별 매력을 못 느꼈는지 배우자는 모두 작은 눈의 홑꺼풀을 골랐다. 세 며느리와 한 사위가 모두 쌍꺼풀이 없다. 무쌍의 가늘..

나의 이야기 2022.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