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풀꽃시인'의 손님대접

Joanne 1 2015. 10. 18. 00:11

 

 

 

 

 

 

 

 

                      [이 아침에] '풀꽃 시인'의 손님 대접


                                                            이정아/수필가

    이번 한국 갔을 때 '풀꽃문학관'을 방문하였다. 공주문화원장이신 나태주 시인의 대표작 '풀꽃'에서 이름을 딴 문학관으로 작년 10월 충남 공주시에 개관하였다.

    법원 관사였던 일본식 가옥을 공주시에서 매입하여 꾸미고, 충남도청에서 관리하는 아담한 문학관이다. 작년 한국에 있을 때 개관식에 가겠다고 약속해 놓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미뤘었다. 나태주 선생님은 한 달에 20회 이상 강연을 다니신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바쁘신 분께 부담드리지 않으려 무작정 갔다. 계시면 다행이고 안계셔도 문학관은 돌아볼 수 있으니.

    도착하여 전화해 보니 깜짝 놀라시며 무척 반가워하신다. 계속 바쁘다가 오랜만에 오전 시간이 비었는데 마침 내가 왔다며 '하나님의 은혜'라고까지 하셔서 송구했다.

    문학관에 도착하여 기웃거리는데 자전거를 탄 시인이 오신다. 서둘러 손수 차를 준비하시더니 찻상을 앞에 두고 우리 내외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신다. "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점점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 같아" 하시며 쑥스럽게 웃으신다. 이 선생을 보니 기도가 하고 싶었다고 하셔서 코끝이 찡했다.

    차를 마신 후엔 오래된 풍금 앞에 앉아 노래를 불러주신다. 오직 두 사람의 관객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과꽃, 오빠 생각, 고향의 봄, 그리고 선생님 시에 맞춰 작곡된 노래들을 듣고 함께 부른 미니음악회였다.

    방방의 전시품은 모두 나태주 시인의 소장품과 애장품이다. 전시품에 대해 일일이 구입 경위와 소장하게 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신다. 진열하지 못한 수집품도 무척 많았다. 선생님의 시처럼 뒤뜰엔 대숲이 울창하고 앞뜰엔 풀꽃이 지천이었다.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자 사모님도 오셔서 간단한 점심이 아닌 만찬이 열렸다. 공주에 왔으니 계룡산은 봐야한다며 산 속 식당으로 안내하신다. 한식대첩에서 대상을 받으신 분의 가게라며, 미리 주문하셨는지 향토음식이 줄줄이 차려있다. 더덕구이, 버섯전, 도토리묵, 토종닭찜에 백숙에 산나물 등. 체면불고한 '먹방'을 했다.

    췌장을 떼어낸 선생님과 신장을 떼어낸 나는 고통을 겪은 공통분모가 있다. 쓸개 빠지고, 콩팥 빠진 사람이라며 조크도 하지만, "아픔을 겪어봐야 글도 사람도 한 단계 나아진다"고 격려하시면서 내 글쓰기와 삶의 멘토가 되셨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나머지 삶은 '화해하고 용서 하는 것'이라며 맺힌 것이 있으면 하나씩 풀며 살라고 하신다.

    입원했을 땐 여러차례 오셔서 위로의 말씀과 격려금도 주셨다. 그걸 아직 못 갚았는데 온갖 선물에 서울 가는 고속버스 표까지 어느틈에 사셔서 사랑의 빚을 넘치게 또 지게 되었다. 우린 친척이니 빚이라는 말은 당치않다며, 선생님 손자인 어진이가 이 선생더러 '미국 이모'라고 하니 친척이 맞다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신다.

    과분한 대접을 받고 나니, 우리집을 다녀가는 손님들께 나는 과연 어떠했나 돌아보았다. 역시 반성할 게 많았다. 만나는 이들에게 오늘이 마지막 만남인듯 간절하게 정성껏 대하여, 시인처럼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LA중앙일보]    발행 2015/10/17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10/1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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