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남의 집 음식은 안 먹었다. 새색시가 시댁에 첫 인사 가서는 밥은 안 먹고 떡만 먹었다. 경상도 진주인 시댁에선 생선도 '고기'라고 했다. 명절이나 제사 때 쓴다는 두부와 해물을 넣은 탕수국은 도무지 입맛에 안 맞았다. 이북식 음식에 길들여진 나는 거의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었다. 굶을 수 없어 장독대 위 소쿠리에 널어놓은 팥찰떡으로 세끼를 해결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싸주신 꾸러미엔 찰떡만 가득했다.
남남북녀의 결혼생활은 늘 음식이 문제였다. 내 음식은 달고 기름지다고 불평을 하고 심지어 국적불명이라고도 했다. 분명 한식을 차렸는데도. 지금은 서로 많이 길들여져 퓨전밥상을 마주 대하지만, 내 음식에 관해 칭찬 들어본 적은 별로 없다. 늘 주장하건데 나는 가정학을 전공하고 식품영양학을 부전공한 사람이거늘.
나도 나이 들으니 이젠 남의 집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경상도 며느리 35년차에 경상도식 탕수도 깔끔하니 입맛에 맞는다. 요즘 우리 식탁엔 얻어온 음식이 절반이다. J선생님의 연근 피클, S씨의 인삼된장, H여사댁 찐 멸치. L집사님댁 김치와 차요테 장아찌 등이다.
남편은 어딜 가나 음식 대우를 받는다. 한국에 가면 친정엄마의 친구분들이 사위가 좋아할 것이라며 오이김치에 풋고추 멸치볶음, 돼지 불고기를 앞다투어 가져오신다. 미국에선 내게 음식을 가져와서는 바깥분이 좋아 할 것이라며 드리라고 한다. 인사로 그러는지는 몰라도 남편의 입맛을 나보다 더 잘아는 듯하다.
아닌게 아니라 식탁에 남의집 음식이 오르면 영락없이 "이거야, 바로 이 맛" 한다. 극찬이다. "맛있어? 맛있어?" 하고 식탁 앞에서 턱 받치고 확인하던 내 음식엔 심드렁하게 "아무말 안하면 맛있단 소리"라던 사람이. 졸지에 나는 남편의 입맛도 딱딱 못 맞추는 사람이 되고만다.
아픈 마누라 때문에 속은 많이 끓였어도, 환자를 잘 거둔 덕에 음식공양은 최고로 받으니 그게 상급이 아니고 무엇이랴.
죽고 사는건 하늘에 달렸으니 정해진 날은 모르나, 아픈 나는 남들보다 조금 먼저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한가지 메뉴라도 확실히 잘 만들어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유레카!" 한마디 듣고싶다. 헐, 남편의 칭찬에 연연하다니, 내 삶이 이렇게 심플해도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