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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old are you?

[이 아침에] 너 몇 살이니?[Los Angeles] 중앙일보 입력 2024.12.23 18:05 수정 2024.12.23 19:05이정아/수필가며칠 전 소그룹의 연말 모임을 하려고 일식 뷔페에서 모였다. 특별히 수요일엔 10% 시니어 디스카운트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수요일로 잡았다. 그래봐야 2불 남짓 절약이지만, 연금 받는 은퇴자의 사는 방법으로 합당하다 생각했다. 나와 띠동갑 위인 8 순 넘으신 멋쟁이 선배님이 조금 늦게 오셨다. 입구에서 계산하지 않고 직진해서 우리들이 모여 앉은 곳으로 와서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도우미 청년이 선배님의 밥값계산서를 가져왔다. 일반 어른요금이 찍혔기에 시니어 할인으로 계산해 달라고 요청했다.젊은 도우미가 선배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대뜸 “How old ar..

나의 이야기 2024.12.24

북치는 할배

북치는 할배​이정아/수필가​아이가 어릴 때 학예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인‘little drummer boy' 를 불렀다. 그때 소품으로 합창하는 아이들의 드럼을 준비해야 했는데, 엄마들의 아이디어로 캔터키 치킨의 패밀리팩을 사서 그 통을 북 대신 쓴 적이 있다. 치킨 통을 목에 걸고 젓가락으로 북치는 시늉을 하며 "파~람 팜팜 파~" "파~람 팜팜 파~" 노래하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 후로 25년이 흘러 우리집에 북치는 어른이 나타났다. 리틀 드러머가 자라서 어른 드러머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그 아이의 아비인 내 남편이 북을 치니 엄밀히 말하면 '북치는 할배‘인 거다. 교회 성가대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남편이 팀파니를 연주하라는 명을 받았다. ​순종을 잘 하는 남편은 지휘자 목사님의 말씀대로 새해부터..

나의 이야기 2024.12.14

도둑이 들다

[이 아침에] 밤새 안녕하신지?중앙일보 Los Angeles입력 2024.11.25 17:59 수정 2024.11.25 19:00타이페이에 놀러 간 아들아이가 카톡을 했다. 우리 사업장인 야구 연습장에 도둑이 들었다며. 알람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건물 책임자가 아들아이로 되어있어서 여행 중인 아들에게 연락이 간 모양이다.우린 예배 중이어서 교회 마치고 야구연습장으로 향했다. 알람회사의 연락을 받은 경찰은 이미 다녀갔고, 신고서 양식을 두고 갔다. 피해 리스트와 피해액을 자세히 기록하여 제출하라고 한다.가게문을 연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오니 난리도 아니더라며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 연습장 쪽 사무실은 금전등록기를 부수고 동전을 여기저기 흩어놓고 난장판을 만들었다. 건축회사 쪽 사무실도 온갖 서랍은 ..

나의 이야기 2024.11.26

밀당이 필요했던 여행

[이 아침에] [밀당이 필요했던 여행] [Los Angeles]중앙일보 미주판 입력 2024.10.27 16:52 이정아/수필가 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도 호텔방에서 뒹굴며 책만 읽다 오곤 한다. 몸을 움직이는 건 다 노동이라 생각해서 남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고생문이 훤하다"라고 김을 빼는 편이었다. 다리 관절수술을 한 데다 평발이어서 오래 걷질 못하는 불편함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공항에선 휠체어 서비스를 받고, 크루즈 배에선 스쿠터를 빌려 탈 수 있어서 그나마 수월했다. 항구에 정박한 후 선택 관광을 할 땐 보행거리가 짧은 가장 낮은 단계의 옵션을 택해야 한다. 이번 여행은 '무엇을 보지 않을까'를 결정해야 하는 희한한 여행이었다. 나..

나의 이야기 2024.10.28

가을이 오면

[이 아침에] [Los Angeles]중앙일보 미주판 입력 2024.09.05 18:28 가을이 오면 9월이 되었습니다. 입추가 지났고 추석이 다가 옵니다. 본격 가을이 시작되겠죠. 큰 명절을 앞둔 이맘때면 한국에 있는 그리움의 존재들을 생각합니다. 부모님 모두 작고하시고 한국엔 남동생 셋이 남아있습니다. 하나뿐인 누이는 멀리 미국에 이렇게 떨어져 산 지 오래입니다. 해마다 추석즈음엔 한국에 나가거나, 못 가면 추석을 쇠시라고 어머니께 약간의 송금을 하곤 했죠.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세 동생들은 부모님을 합장한 묘소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에 식당을 정해 함께 식사하더군요. 요즘 세태에 맞는 방법인 듯합니다. 저는 세 동생 집에 엘에이 갈비를 보내는 것으로 추석선물을 대신합니다. 마침 제가 엘에이 ..

나의 이야기 2024.09.06

방심

방심(放心) 이정아 팬데믹동안 조심조심 살았다. 사람 모이는 곳엔 안 가고 심지어 교회에 가서도 환자실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고 나름 신경을 썼다. 나처럼 장기 이식을 한 환자들은 일반인들에게 특효인 코로나 치료제 Paxlovid 도 쓰질 못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주치의가 늘 강조한 발병 이전의 예방수칙을 준수했다. 주치의는 텃밭 가꾸기도 흙에 균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팬데믹이 해제되자 연주회다 강연회다 전시회다 다들 몰려가도 몸을 사리고, 2-3년 발길을 끊다 보니 그게 인생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게 아닌 듯 생각이 들어 아쉽지 않고 덤덤해졌다. 팬데믹이 가져다준 선물인 ‘혼자 놀기’에 익숙해졌다. 아이패드 하나만 있으면 유튜브로 음악회도 전시회도 영화도 책 읽기도 다 가능한 ..

나의 이야기 2024.08.10

둔한 2등이 되어보자

[이 아침에]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4.07.01 18:28 수정 2024.07.01 18:29 둔한 2등이 되어보자 이정아/수필가 신장 이식 수술 후 정기검진차 한국에 나갈 때, 마침 국제 펜클럽의 '세계 한글 작가대회' 날짜가 맞물려서 참석하게 되었다. 경주에서 열린 작가 대회에는 한국, 중국, 러시아, 남미, 미국, 독일, 일본 등지에서 한글로 문학을 하는 이들이 모여 세미나를 열었다. 공부와 담쌓은 나는 수업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서 쓰던 전화기가 고장이 났기에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핑계김에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세미나 도중 나와 경주시내 KT 고객센터에 갔다. 유심(USIM) 칩에는 문제가 없으니 전화기를 고쳐야 하는데 경주에는 애플스토어가 없어 포항엘 가야 ..

나의 이야기 2024.07.02

강림하다.지름신

[이 아침에]강림하다. 지름신 [Los Angeles] 미주중앙일보 입력 2024.06.05 17:48 플러그 네 개를 끼울 수 있는 콘센트(power outlet)를 샀다. 보통 전기에 관한 물품은 남편이 사지만 리모트 컨트롤의 배터리 같은 것은 동네 편의점에서 내가 살 때도 있다. 내 방 화장실에서 전동칫솔, 워터피크,헤어드라이어를 쓰려는데 이걸 빼고 저걸 끼우고 하려니 귀찮아서 네 구멍 짜리 콘센트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새 걸 턱하니 끼우고 보란 듯이 불렀더니 “오호라~ 제법인데, 나 없어도 살겠네 “ 하며 과한 칭찬을 한다. 그런 소소한 건 앞으로 스스로 해결하라는 싸인인 듯싶었다. 한껏 고무되어서 시키지도 않은 정원가위, 과일나무 지지대, 모종 보호 커버, 과일 열매용 봉지, 블루베리 나무용 ..

나의 이야기 2024.06.06

과거완료형 행복

[Los Angeles]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4.05.12 16:51 [이 아침에]과거완료형 행복 이정아/수필가 이곳은 어머니날, 아버지 날이 따로인데 한국은 ‘어버이날’이라고 떠들썩합니다. 미뤄두었던 효도를 한 방에 해 치우려는 듯 줄줄이 돈이 달려 나오는 머니 케이크에 미슐랭 식당 외식에 자손들과 부모들은 경쟁하듯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며 자랑합니다. 2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21년에 어머니가 소천하셔서 이젠 어머니 날도 아버지 날도 다 부질없는 노릇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한국의 어버이날은 빠르고 이곳의 어머니날은 느려서 그 시차를 못 기다리시고 늘 전화로 어머니날 송금했냐? 조급한 확인 하시곤 했었죠. 남편 보기에 부끄럽던 그 물질추구의 품위 없던 채근이 어머니가 안 계시니 ..

나의 이야기 2024.05.13

우리 이제 심안으로 만나자

[이 아침에] 우리 이제 심안(心眼)으로 만나자 [Los Angeles] 중앙일보 입력 2024.03.31 19:00 수정 2024.03.30 22:48 그녀와 나는 오래전 교회에서 만났다. 아니 그보다 전 한국에서 먼저 만났다. 나를 보고 국어선생님이셨죠? 하는 걸 보면 공부엔 별 관심 없었던 듯하다. 나는 가정과목을 가르쳤고 내 기억에도 그녀가 뚜렷이 남아있지 않으니 서로 그렇고 그런 학생과 선생 사이었나 보다. 그래도 이역만리에 이민 와서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그 인연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불가에서는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7000겁, 부모와 자식이 되기 위해서는 8000겁, 형제자매가 되기 위해서는 9000겁, 그리고 스승과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려 1만 겁의 인연을 쌓아야 한다..

나의 이야기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