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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땀 나는 AI시대

[이 아침에] 진땀 나는 AI 시대 [Los Angeles]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06.27 18:22 이정아/수필가 교회 창립기념일 날 누군가가 도네이션 한 물티슈를 교인 한 사람당 한 박스씩 선물로 받아왔다. 제법 묵직한 박스안에 작은 물티슈가 100팩 이상 들어있다. 웬 횡재인가 싶어 그날부터 아무 곳이나 눈에 띄는 대로 청소하기 시작했다. 부엌, 화장실, 가구, 마룻바닥 할 것 없이 향긋한 물티슈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다가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차를 타자 차 안에 먼지가 쌓인 게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내가 차 안의 인테리어를 속속들이 닦고 터치 스크린을 반짝거리게 닦았다. 아뿔싸 스크린 잠금 설정을 한 후에 물티슈로 닦아야 하건만 그냥 대고 마구 문질렀더니 AI가 헷갈렸나 ..

나의 이야기 2022.06.28

고마운 사람들/이정아

[이 아침에][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05.31 18:46 고마운 사람들 누워서 방바닥에 엑스레이 찍기가 취미인 여자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남자가 여행을 떠났다. 남자의 생일과 둘의 결혼기념일이 같아서 연례행사로 하는 여행이다. 전적으로 남자가 계획하며 여자는 하나의 여행가방처럼 따라갈 뿐이다. 여자는 여행 중에 읽을 책 세 권과 게임용 아이패드만 챙겼다. 남자는 서핑과 스노클링에 필요한 옷과 장비를 챙기니 여자보다 짐이 많다. 몸을 혹사하여 체험을 해야 여행으로 여기는 남편과 달리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인물 관찰이 나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밖의 경치를 구경하러 갑판으로 갔던 이들이 높은 파도로 배가 흔들리자 다시 객실로 들어오려 애쓴다. 젊은이들은 쉽게 들어왔으나 세 ..

나의 이야기 2022.06.01

느닷없이 웬 봉고?/이정아

[이 아침에] 느닷없이 웬 봉고(Bongo)? [Los Angeles]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04.26 18:29 나는 통증을 잘 견딘다.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사들이 내게 참을성 있는 착한 환자라고 칭찬을 하곤 했다. 다른 환자에 비해 고통을 덜 느껴서가 아니라 입 밖으로 엄살을 부리지 않으니 그리 생각했나 보다. 관절 수술 후 재활운동할 때도 물리 치료사가 칭찬을 했다. 신장 두 개를 다 떼어내고 인공호흡기를 끼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을 때도 말이 없으니 모든 병원 스태프들이 엄지 척 나의 인내심을 인정했다. 진통제를 목에 걸어주고 통증이 심할 때마다 눌러 주입하라 했는데도 그냥 곰처럼 참으며 진통제를 남겼다. 영리하지 못한 환자이지 칭찬받을만한 위인은 아니다. 통증 말고 ..

나의 이야기 2022.04.27

선우 명수필선44/아버지의 귤나무

작가의 말 이민 와서 시작한 글쓰기가 올해로 30년이 넘었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이곳 신문의 칼럼 연재는 24년이 되었다. 그동안 운이 좋아서 신문의 지면도 지속적으로 얻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도 받았다. 디아스포라 수필가라고 불러주시는 분도 계실 정도로 이민의 삶과 이민자의 생각을 오랫동안 썼다. 나태주 시인이 멘토처럼 말씀 주신대로 이곳에 있는 현재의 내 모습을 글로 쓰라는 조언에 충실하였다. 2013년에 남편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했다. 시인은 이런 아픔도 후엔 훌륭한 글감이라며 행복한 작가가 되었다는 격려도 해 주셨다. 그 후론 덤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았다. 갈등도 집착할 일도 줄이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인 ‘운이 좋아서’는 실은 ‘하..

나의 이야기 2022.04.20

비말 vs 비만

[이 아침에] 비말 vs 비만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03.22 18:33 이정아/수필가 며칠 째 기침을 하고 목이 아프다는 남편이 오미크론에 걸린듯하여 의심스러웠다. 자가 키트로 검사하니 음성이 나왔는데도 교회에서 하는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았다. 그것도 음성이니 다행이다 싶지만 면역력이 없는 나는 무척 조심중이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연신 기침을 하기에 “비말!”하고 짜증 내며 차창을 열었다. 좁은 공간에서 전염되기 쉬운 조건 아닌가. 2년 조심히 살다가 막판에 부주의로 감염될까 봐 걱정스러운 나머지 나온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그랬더니 이 양반이 “비만!”으로 맞대응을 하네. 하도 기가 막혀 뭐가 더 위험한가 따져보자는 말에 ‘비말’은 잠깐 위험하나 ..

나의 이야기 2022.03.23

정직할 수 있는 용기/이정아

[이 아침에] 정직할 수 있는 용기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02.23 19:29 수정 2022.02.23 20:29 이정아/수필가 친하게 지내는 아우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들아이가 미술계 학교로 진학하는 인터뷰와 포트폴리오 면접을 보고 실기시험을 치렀는데, 순진한 아들 때문에 속상하다는 이야기다. 전말인즉 아이가 제출한 훌륭한 포트폴리오를 본 면접관이 전부다 너 혼자 한 작품이냐? 묻더란다. 아이는 “제가 다했지만 마지막 손질은 선생님이 도와주셨어요” 하고 정직하게 말했단다. 같은 학원에서 준비하던 아이들은 모두 제가 혼자 다 했어요 했는데 눈치 없는 자기 아들만 정직하게 말해 불이익을 당할 거라며 지레 걱정이다. 나도 그 시간에 맞춰 기도했기에 그 엄마의..

나의 이야기 2022.02.25

‘처진 눈’ 유전자/이정아

[이 아침에] ‘처진 눈’유전자 [Los Angeles]중앙일보 미주판 입력 2022.01.24 18:12 수정 2022.01.24 19:12 우리집의 4남매는 모두 눈이 크고 처졌다. 부모님을 닮았을 것이다. DNA 유전자가 지나간 눈은 착해보이는 인상으로 젊을 땐 호감이었는데, 늙을수록 게슴츠레한 눈으로 변해 눈을 떠도 자는 듯 보인다. 이즈음 사진 속의 나는 거의 자고있다. 남편은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자, 눈을 크게 뜨시고, 눈에 힘 주시고 ~” 라고 주문한다. 우리집안 사람들에게 좋은 사진이란 나 같지 않게 예쁘게 나온 사진이 아니라, 눈을 떴느냐 아니냐가 좋은 사진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우리 형제들은 친가와 외가가 왕눈이어서 큰눈엔 별 매력을 못 느끼고 지루했는지, 배우자는 모두 작은 눈의..

나의 이야기 2022.01.26

무용지용의 나로 돌아오며/이정아

[이 아침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나로 돌아오며 [중앙일보 미주판] | 입력 2021/12/27 17:24 이정아/수필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손톱만큼의 유산을 나누게 되었다. 4자녀 상속인 중 맏이인 나는 미국 시민권을 받을 때 한국 국적이 상실되었다. 상속을 받으려면 예전의 임 씨였던 내가 미국 와서 이 씨가 된 이유를 진술하고 내가 나임을 공증받아야 했다. 성이 바뀐 내가 어머니의 딸임을 증명해야 하는 세칭 ‘동일인 증명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장례식 마친 후 한 달 뒤에나 미 대사관의 공증 인터뷰 약속이 잡혀 그걸 끝내고 오느라 팬데믹의 감옥살이를 했다. 면역력이 없는 장기이식 환자여서, 시간이 많아도 동창이며 친지를 만날 처지가 아니었다. 엄마 사시던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노후에 많이 쓸쓸했을 ..

카테고리 없음 2021.12.28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이 아침에]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Los Angeles]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1.12.02 18:50 수정 2021.12.02 19:50 한국의 가을이 깊어가나 싶더니 이른 첫눈이 오고 바로 겨울이 되었다. 가을을 느끼지도 못한채 오버코트를 입게 되었다. 장례식을 염두에 두고 검정 가을 옷 몇 장을 챙겨왔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엄마 옷장을 뒤져보았다. 엄마의 집엔 응급실에 실려간 6월의 달력이 그대로 걸려있다. 낙상사고 후 뇌수술과 고관절 수술을 하시고 요양병원으로 퇴원을 하셨기에 이 집에 다시 못 오시고 돌아가셨다. 그 5개월의 시간동안 엄마는 임종 중이었다. 몸이 서서히 나빠지면서 우리는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어졌다. 귀가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기관이라기에 모두들 엄마 귀에 대고 감사했다고..

나의 이야기 2021.12.03

이별을 위한 만남

[이 아침에]이별을 위한 만남 [Los Angeles] 중앙일보 입력 2021.11.10 18:23 수정 2021.11.10 19:23 이정아 / 수필가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 하나는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의 여유로움이라고 할까. 내 주위의 일들에 대해 크게 좋지도 썩 나쁠 것도 없이 무덤덤 해지는 것이다. 힘든 이민 생활이 만들어준 내공 같은 것일 수 있고, 하나님이 나의 든든한 배경이라는 자신감 일 수도 있겠다. 지인의 생일파티를 즐겁게 하고 돌아온 날, 한국에서 카톡이 여럿 들어와 있었다. 무음으로 핸드폰을 세팅해 놓았기에 몰랐다. 한국의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가 ‘임종실’로 옮겨 갔다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거였다. ‘임종실’이라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엄마는 세상..

나의 이야기 202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