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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과 시행착오/이정아

[이 아침에] 뜨개질로 배우는 삶의 ‘시행착오’ [LA중앙일보] 수필가 이정아 2020/11/17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20/11/16 18:57 '가정대학을 나온 사람은 살림을 잘할 것이다’는 편견은 내게서 버리는 것이 좋다. 뜨개질도 잘 못하면서 여고의 가정 선생을 7년간 하였다. 실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정 선생을 하면서, 뜨개질은 반에서 유난히 잘하는 학생을 조교 삼아 배워가며 가르쳤다. 남편은 시집올 때 가져온 수많은 덮개와 깔개 등의 수 공예품이 나의 솜씨인 줄 아직도 알고 있다. 거짓말은 안 했다.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을 말하자면 숙제 검사하다가 “참 예쁘구나" 한마디 하면, 마음 착한 여학생들은 고이 포장까지 하여 선생님에게 선물로 주곤 하였다. 옛날이야기 이긴 하..

나의 이야기 2020.11.18

신발에 거미줄 치다/이정아

[이 아침에] 신발에 거미줄 치다 [LA중앙일보] 2020/10/16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20/10/15 18:05 수필가 이정아 추석날 집에 놀러 왔다 돌아가는 아들 내외가 현관에서 신을 신는다. 며늘아기가 신을 신다 말고 깔깔 웃으며 “어머니 신발에 거미가 살아요. 거미줄도 있어요”한다. 과연 현관에 내놓은 두 켤레의 신발 중 파란색 운동화 속에 거미줄이 쳐있다. 조그만 거미도 살고 있다. covid-19 팬데믹 동안 병원 가느라 외출한 것 말고는 마켓, 미용실, 우체국 해서 개인 외출이 채 다섯 번도 안된다. 그러니 빈집인 줄 알고 거미가 터를 잡은 모양이다. 신발뿐인가 자동차도 길에 주차해두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산불로 재가 날아와 희부연 먼지와 새똥으로 더럽다. 비가 오면 세차가 될 테..

나의 이야기 2020.10.17

부부도우미, 냥이 집사

냥이 집사 팬데믹으로 답답한 아들 내외가 3박 4일 트레킹을 다녀온다고 한다. 잘 됐구나 붐비지 않는 곳에서 바람 쐬고 오너라 했다. 그러자 아들아이가 집 비우는 동안 고양이를 돌봐달란다. 평소 건강이 안 좋아 극히 몸을 아껴야 하는 내겐 큰 부담이다. 떠맡아야 할 남편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내니 남편은 흔쾌히 승낙한다. 저녁에 아들 집에 가서 고양이 밥 주기와 배설물 치우기 교육을 받고 왔단다. 이거야 원 아이 낳으면 애보기를 감당하려나 했는데 고양이가 먼저라니 육아의 전초전인가? 애를 안 만들고 일거리를 만드는 아들 내외가 맘에 안 들었다.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한 고양이 두 마리는 중성화 수술 후 아들 집에 들어왔다. 흰 바탕에 검정 얼룩 고양이 쌍둥이는 한 마리는 젖소처럼 생겨서 milk이고, 하나는..

나의 이야기 2020.09.30

코로나 시대의 병원 풍경

[이 아침에] 코로나 시대의 병원 풍경 [LA중앙일보] 2020/08/28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20/08/27 18:44 수필가 이정아 8월의 어느 더운 날, 위급상황이 발생해 집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에 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환자 등록을 야외에서 거리두기로 한다. 땡볕에 선풍기를 틀어놓았을 뿐이다. 천막 밑에 앉아 호출할 때까지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응급환자는 급해서 왔을 텐데 기다리다 숨넘어가는 수도 있겠다. 한 시간 만에 실내로 들어가 약식 코로나바이러스 테스트를 받고 결과가 음성이어서 비로소 병실로 올라갔다. 등록부터 입실까지 보호자는 얼씬 못하는 상황이다. 팬데믹 시기의 환자는 아픈 건 물론 서류처리까지 혼자 감당해야 한다. 입원실은 하루 한 시간만 가족 한 명의 면회가 가능..

나의 이야기 2020.08.29

올 것이 오다/이정아

드디어’ 왔다고는 말하기 싫다. 반가운 것도 아니고, 오지 말았으면 했던 것이 온 것이니. 조심한다며 간격도 지키고 마스크도 쓰고 살았는데 아들 내외가 covid 19에 감염이 되었다. 놀러 온 며늘아기의 여동생도 걸려 그 집에 사는 세 식구가 몽땅 환자가 된 것이다. 평소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며 초연한 척 떠들었는데, 막상 우리 집에 그런 일이 닥치고 보니 속상하고 불안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면역력이 전무한 기저질환 환자인 내게는 옮겨지지 않았다. 그 아이들과 독립기념일에 불꽃놀이 구경을 하느라, 경비행기를 운전했던 남편이 혹시나 해서 검사를 하니 다행히 네거티브(음성)여서 안심했다. 남편은 환자인 나 때문에 2주에 한 번씩 검사를 하고 벌써 8번의 검사를 받았다. 아들아이는 7월 1..

나의 이야기 2020.08.06

운동권 며느리에게 배운다/이정아

수필가 이정아 우리 집에도 실업자가 생겼다. 뉴욕에 소재한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던 며늘아기가 EDD에 실업수당을 신청했다고 한다. 난리통에 큰 회사도 맥을 못 추나 보다. 코로나바이러스 19에 직격탄을 맞고 멈춰서 버린 미국에서 실업대란이 현실화되었다. 미 전역에서 5월 말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4080만 건을 기록했다. 미 의회예산국은 6월의 실업률은 대공황 때의 최악인 24.9%까지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며칠 전 남편의 생일을 맞아 아들 내외가 집에 와서 식사를 함께했다. 며늘아기에게 근황을 물었다. 일을 쉬니 시간이 많아 봉사를 다닌다고 한다. 며늘아기가 실직을 했다 해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젊은 사람에게는 실업이 기회일 수도 있으므로 아들 내외가 알아서 잘 해결할 것으로 믿었다. “무슨 봉..

나의 이야기 202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