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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부메랑/이정아

선한 부메랑 [이 아침에] 이정아 / 수필가 | [LA중앙일보] 2021/07/12 미주판 20면 | 입력 2021/07/11 19:00 아침 일찍 들러 오이와 가지, 호박을 따간 S 시인이 저녁 무렵 식혜 2병과 무짠지를 현관 앞에 두고 갔다. 식혜는 주겠거든 한 병만 달라고 노래를 해도, 인심 후한 시인은 아들네도 주라며 내 말은 듣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식혜 맛을 모르는지 아들 집 냉장고 구석에서 구박받는 식혜를 보곤 아들 한테는 보내지 않기로 했다. 교회에 가져가서 구역 식구들과 친교시간에 먹으면 딱인데, 요즘의 교회 형편과 맞지를 않아 선배님께 SOS를 쳤다. 식혜 한 병을 픽업하러 오신 선배는 망고 한 상자와 맛난 붕어빵을 사 오셨다. 텃밭채소가 식혜가 되었다가 식혜는 망고로 3단 변신을 했다..

나의 이야기 2021.07.12

마음의 닻이 되는 작은 행복들

마음의 닻이 되는 작은 행복들 [이 아침에] 이정아 / 수필가 | [LA중앙일보] 2021/06/11 미주판 22면 | 입력 2021/06/10 20:00 “아가들아 잘 있었니?”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이 안부인사를 한다. 남편을 알아본 것들이 벌써 난리법석이다. 첨벙하고 튀어 오르고 기척을 향해 몰려든다. 금붕어가 꼬리를 심하게 흔들고 이끼 먹는 못난이 메기 두 마리도 벽을 타고 슬금슬금 다가온다. 미꾸라지들도 주인을 알아보고 세리머니를 하는 듯하다. 물고기도 생각 없이 사는 게 아닌 모양이다. 여행가방을 안에 들이지도 않고, 현관 앞 작은 연못을 들여다보며 남편은 먹이를 다 먹도록 기다린다. 붕어 밥 먹는 소리가 사람 못지않게 시끄럽다. 유난히 식사시간에 쩝쩝거리는 소리에 민감한 남편이다. 그런데 물고..

나의 이야기 2021.06.12

“현금과 나팔로 노래하라”

현금과 나팔로 노래하라 이정아 교회 성가대로 봉사할 때였다. 옆자리의 연세 많으신 권사님은 눈이 어두우셔서 내게 종종 가사를 묻곤 하셨다. 보통 “수금과 나팔로 찬양하라” 로 익숙한 노래였는데 그날의 악보에는 “현금과 나팔로 찬양하라”로 나와있었다. 외국 성가를 번역하다 보니 생긴 차이라 할 수 있다. 수금이나 현금이나 매일반으로 ‘손으로 연주하는 현악기’ 일 터. 요즘의 미니 하프나 크로마하프 정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거 현금이 뭐이니? 현찰 이가?” 하시는 거다. 이북 사투리로 물으시는데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해서 장난기가 발동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한술 더 떠서 “교회 악보에 캐시(cash)를 다 쓰고 말세다 말세” 이러셔서 그 놀라운 응용력에 폭소를 했다. 그날의 성..

나의 이야기 2021.05.24

줄리의 법칙

[이 아침에]줄리의 법칙 [LA중앙일보] 2021/04/14 미주판 20면 입력 2021/04/13 19:00 이정아/수필가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데 그 일이 원하지 않는 불운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경우,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다. 팬데믹 기간 중 교통사고가 났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스톱 사인에 서지 않고 질주를 하여 그대로 남편이 운전하던 차를 받았다. 차는 큰 손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간 청년은 안타깝게도 며칠 뒤 사망을 했다. 경찰에 의하면 사고 난 오토바이는 청년이 훔친 거였고, 그 청년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절도죄를 짓고 사고를 냈다는 거였다. 유명을 달리한 청년에게 가졌던 죄책감이나 동정심도 반감되는 상황이 되었다. 하필이면 사망사고, 하필이면 훔친 차, 하필..

나의 이야기 2021.04.14

쑥 캐러 간 날

[이 아침에] 쑥 캐러 간 날 [LA중앙일보] 2021/03/16 미주판 18면 입력 2021/03/15 19:00 이정아/수필가 치노힐스의 너른 집에 사는 페이스북 친구가 마당에 지천으로 핀 쑥 사진을 올리셨다. 그 쑥으로 끓인 쑥국과 쑥부침개 사진은 침샘을 자극했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 일뿐이지만 코끝에 쑥 향기가 며칠째 감돌았다. 쑥을 구하려 웹사이트를 뒤져보고 모종 가게와 마켓에 나왔나 알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한뿌리만 주시겠습니까?” 남에게 아쉬운 소리 죽어도 하기 싫어하는 내가 용기를 내어 쑥 사진 밑에 댓글을 달았다. 한뿌리만 심으면 다음 해엔 마구 퍼진다기에 소망을 담은 ‘한뿌리 적선’을 구한 거였다. 맘씨 좋은 그분은 기꺼이 주시마 했다. 자신과 친한 내 선배가 그 댁에 놀러 올 ..

나의 이야기 2021.03.17

사랑주머니

[이 아침에] 우리 마음속의 ‘사랑주머니’ [LA중앙일보] 2021/02/17 미주판 17면 입력 2021/02/16 19:00 이정아/수필가 사방이 하트로 도배를 하는 사랑의 날이 무사히 지나갔다. 한국에 살던 시절엔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 고백하는 날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일본, 중국, 한국의 동남아권 에서는 2월 밸런타인데이에 진 빚을 갚으라고 3월 화이트데이가 생겼다고도 한다. 3월엔 남자가 여자에게 캔디를 준다나 뭐라나. 일본에서 들어온 풍속이라는데 아무래도 초콜릿 회사가 만든 상술인듯하다. 그러다가 미국에 오니 한국과는 양상이 달랐다. 성 발렌티노 신부가 등장하는 전래된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꽃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밸런타인데이인 것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 ..

나의 이야기 2021.02.17

비대면 시대의 쇼핑/이정아

[이 아침에] 비대면 시대의 쇼핑 [LA중앙일보] 2021/01/15 미주판 18면 입력 2021/01/14 20:00 이정아/수필가 비대면 시대가 되니 사람 만나는 일이 없어졌다. 눈에서 멀면 마음도 멀어지듯 연말연시에 여기저기 챙기던 선물은 준비하지 않아도 덜 미안한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평소 늘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과 날 챙기던 제자한테는 무어라도 보내고 싶었다. 선생님은 연세가 드셔서 부엌일이 힘드시다니 반 조리된 음식을 주문해 보냈고, 샌프란시스코의 제자한테는 크리스마스 꽃을 주문해 보내고 할 일 다 한 듯 흡족했다. 주문처로 부터 명절 전 배달을 확약받은 터라, 안심하고 기다리며 설렜다. 선물 받고 반가워할 모습들을 미리 그려보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웬걸. 선물의 절기를 맞아 배달 물량이..

나의 이야기 2021.01.17

뜨개질과 시행착오/이정아

[이 아침에] 뜨개질로 배우는 삶의 ‘시행착오’ [LA중앙일보] 수필가 이정아 2020/11/17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20/11/16 18:57 '가정대학을 나온 사람은 살림을 잘할 것이다’는 편견은 내게서 버리는 것이 좋다. 뜨개질도 잘 못하면서 여고의 가정 선생을 7년간 하였다. 실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정 선생을 하면서, 뜨개질은 반에서 유난히 잘하는 학생을 조교 삼아 배워가며 가르쳤다. 남편은 시집올 때 가져온 수많은 덮개와 깔개 등의 수 공예품이 나의 솜씨인 줄 아직도 알고 있다. 거짓말은 안 했다.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을 말하자면 숙제 검사하다가 “참 예쁘구나" 한마디 하면, 마음 착한 여학생들은 고이 포장까지 하여 선생님에게 선물로 주곤 하였다. 옛날이야기 이긴 하..

나의 이야기 2020.11.18

신발에 거미줄 치다/이정아

[이 아침에] 신발에 거미줄 치다 [LA중앙일보] 2020/10/16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20/10/15 18:05 수필가 이정아 추석날 집에 놀러 왔다 돌아가는 아들 내외가 현관에서 신을 신는다. 며늘아기가 신을 신다 말고 깔깔 웃으며 “어머니 신발에 거미가 살아요. 거미줄도 있어요”한다. 과연 현관에 내놓은 두 켤레의 신발 중 파란색 운동화 속에 거미줄이 쳐있다. 조그만 거미도 살고 있다. covid-19 팬데믹 동안 병원 가느라 외출한 것 말고는 마켓, 미용실, 우체국 해서 개인 외출이 채 다섯 번도 안된다. 그러니 빈집인 줄 알고 거미가 터를 잡은 모양이다. 신발뿐인가 자동차도 길에 주차해두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산불로 재가 날아와 희부연 먼지와 새똥으로 더럽다. 비가 오면 세차가 될 테..

나의 이야기 2020.10.17

부부도우미, 냥이 집사

냥이 집사 팬데믹으로 답답한 아들 내외가 3박 4일 트레킹을 다녀온다고 한다. 잘 됐구나 붐비지 않는 곳에서 바람 쐬고 오너라 했다. 그러자 아들아이가 집 비우는 동안 고양이를 돌봐달란다. 평소 건강이 안 좋아 극히 몸을 아껴야 하는 내겐 큰 부담이다. 떠맡아야 할 남편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내니 남편은 흔쾌히 승낙한다. 저녁에 아들 집에 가서 고양이 밥 주기와 배설물 치우기 교육을 받고 왔단다. 이거야 원 아이 낳으면 애보기를 감당하려나 했는데 고양이가 먼저라니 육아의 전초전인가? 애를 안 만들고 일거리를 만드는 아들 내외가 맘에 안 들었다.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한 고양이 두 마리는 중성화 수술 후 아들 집에 들어왔다. 흰 바탕에 검정 얼룩 고양이 쌍둥이는 한 마리는 젖소처럼 생겨서 milk이고, 하나는..

나의 이야기 2020.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