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44

선우 명수필선44/아버지의 귤나무

작가의 말 이민 와서 시작한 글쓰기가 올해로 30년이 넘었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이곳 신문의 칼럼 연재는 24년이 되었다. 그동안 운이 좋아서 신문의 지면도 지속적으로 얻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도 받았다. 디아스포라 수필가라고 불러주시는 분도 계실 정도로 이민의 삶과 이민자의 생각을 오랫동안 썼다. 나태주 시인이 멘토처럼 말씀 주신대로 이곳에 있는 현재의 내 모습을 글로 쓰라는 조언에 충실하였다. 2013년에 남편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했다. 시인은 이런 아픔도 후엔 훌륭한 글감이라며 행복한 작가가 되었다는 격려도 해 주셨다. 그 후론 덤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았다. 갈등도 집착할 일도 줄이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인 ‘운이 좋아서’는 실은 ‘하..

나의 이야기 2022.04.20

비말 vs 비만

[이 아침에] 비말 vs 비만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03.22 18:33 이정아/수필가 며칠 째 기침을 하고 목이 아프다는 남편이 오미크론에 걸린듯하여 의심스러웠다. 자가 키트로 검사하니 음성이 나왔는데도 교회에서 하는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았다. 그것도 음성이니 다행이다 싶지만 면역력이 없는 나는 무척 조심중이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연신 기침을 하기에 “비말!”하고 짜증 내며 차창을 열었다. 좁은 공간에서 전염되기 쉬운 조건 아닌가. 2년 조심히 살다가 막판에 부주의로 감염될까 봐 걱정스러운 나머지 나온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그랬더니 이 양반이 “비만!”으로 맞대응을 하네. 하도 기가 막혀 뭐가 더 위험한가 따져보자는 말에 ‘비말’은 잠깐 위험하나 ..

나의 이야기 2022.03.23

정직할 수 있는 용기/이정아

[이 아침에] 정직할 수 있는 용기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02.23 19:29 수정 2022.02.23 20:29 이정아/수필가 친하게 지내는 아우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들아이가 미술계 학교로 진학하는 인터뷰와 포트폴리오 면접을 보고 실기시험을 치렀는데, 순진한 아들 때문에 속상하다는 이야기다. 전말인즉 아이가 제출한 훌륭한 포트폴리오를 본 면접관이 전부다 너 혼자 한 작품이냐? 묻더란다. 아이는 “제가 다했지만 마지막 손질은 선생님이 도와주셨어요” 하고 정직하게 말했단다. 같은 학원에서 준비하던 아이들은 모두 제가 혼자 다 했어요 했는데 눈치 없는 자기 아들만 정직하게 말해 불이익을 당할 거라며 지레 걱정이다. 나도 그 시간에 맞춰 기도했기에 그 엄마의..

나의 이야기 2022.02.25

‘처진 눈’ 유전자/이정아

[이 아침에] ‘처진 눈’유전자 [Los Angeles]중앙일보 미주판 입력 2022.01.24 18:12 수정 2022.01.24 19:12 우리집의 4남매는 모두 눈이 크고 처졌다. 부모님을 닮았을 것이다. DNA 유전자가 지나간 눈은 착해보이는 인상으로 젊을 땐 호감이었는데, 늙을수록 게슴츠레한 눈으로 변해 눈을 떠도 자는 듯 보인다. 이즈음 사진 속의 나는 거의 자고있다. 남편은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자, 눈을 크게 뜨시고, 눈에 힘 주시고 ~” 라고 주문한다. 우리집안 사람들에게 좋은 사진이란 나 같지 않게 예쁘게 나온 사진이 아니라, 눈을 떴느냐 아니냐가 좋은 사진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우리 형제들은 친가와 외가가 왕눈이어서 큰눈엔 별 매력을 못 느끼고 지루했는지, 배우자는 모두 작은 눈의..

나의 이야기 2022.01.26

무용지용의 나로 돌아오며/이정아

[이 아침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나로 돌아오며 [중앙일보 미주판] | 입력 2021/12/27 17:24 이정아/수필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손톱만큼의 유산을 나누게 되었다. 4자녀 상속인 중 맏이인 나는 미국 시민권을 받을 때 한국 국적이 상실되었다. 상속을 받으려면 예전의 임 씨였던 내가 미국 와서 이 씨가 된 이유를 진술하고 내가 나임을 공증받아야 했다. 성이 바뀐 내가 어머니의 딸임을 증명해야 하는 세칭 ‘동일인 증명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장례식 마친 후 한 달 뒤에나 미 대사관의 공증 인터뷰 약속이 잡혀 그걸 끝내고 오느라 팬데믹의 감옥살이를 했다. 면역력이 없는 장기이식 환자여서, 시간이 많아도 동창이며 친지를 만날 처지가 아니었다. 엄마 사시던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노후에 많이 쓸쓸했을 ..

카테고리 없음 2021.12.28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이 아침에]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Los Angeles]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1.12.02 18:50 수정 2021.12.02 19:50 한국의 가을이 깊어가나 싶더니 이른 첫눈이 오고 바로 겨울이 되었다. 가을을 느끼지도 못한채 오버코트를 입게 되었다. 장례식을 염두에 두고 검정 가을 옷 몇 장을 챙겨왔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엄마 옷장을 뒤져보았다. 엄마의 집엔 응급실에 실려간 6월의 달력이 그대로 걸려있다. 낙상사고 후 뇌수술과 고관절 수술을 하시고 요양병원으로 퇴원을 하셨기에 이 집에 다시 못 오시고 돌아가셨다. 그 5개월의 시간동안 엄마는 임종 중이었다. 몸이 서서히 나빠지면서 우리는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어졌다. 귀가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기관이라기에 모두들 엄마 귀에 대고 감사했다고..

나의 이야기 2021.12.03

이별을 위한 만남

[이 아침에]이별을 위한 만남 [Los Angeles] 중앙일보 입력 2021.11.10 18:23 수정 2021.11.10 19:23 이정아 / 수필가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 하나는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의 여유로움이라고 할까. 내 주위의 일들에 대해 크게 좋지도 썩 나쁠 것도 없이 무덤덤 해지는 것이다. 힘든 이민 생활이 만들어준 내공 같은 것일 수 있고, 하나님이 나의 든든한 배경이라는 자신감 일 수도 있겠다. 지인의 생일파티를 즐겁게 하고 돌아온 날, 한국에서 카톡이 여럿 들어와 있었다. 무음으로 핸드폰을 세팅해 놓았기에 몰랐다. 한국의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가 ‘임종실’로 옮겨 갔다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거였다. ‘임종실’이라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엄마는 세상..

나의 이야기 2021.11.12

‘Salt and Pepper’

[이 아침에] ‘Salt and Pepper’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1.10.12 19:03 이정아/수필가 병원 진료실앞 복도에서 내가 앉은 휠체어를 남편이 밀고 있었다. 큰 수술을 마친뒤여서 내 몰골이 말이 아닐 때였다. 용모에 신경 쓸 새도 없고 만사가 귀찮았다. 고생으로 찌든 머리칼은 백발이었다. 그 때 옆에서 우리내외를 보고있던 분이 나더러 “착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이런다. 뜨헉! 누나라고 해도 봐드릴까 말까인데 남편과 나를 모자지간으로 보다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실상을 파악한 그분은 미안한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병원에서 오던길로 미용실에 들러 당장 흑발로 염색을 하고, 남편에겐 앞으로 염색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래야 내 억울함이 풀릴것 같았다. 몇년동안 ..

나의 이야기 2021.10.14

기타 등등의 삶/이정아

[이 아침에] ‘기타 등등’의 삶 이정아 / 수필가 | [LA중앙일보] 2021/09/10 미주판 22면 | 입력 2021/09/09 19:00 페이스북에 20대의 사진을 올리는 게 요즘 유행이라기에 쓸만한 사진을 찾아보았다. 우리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추억에 잠겨 옛날을 반추하는 걸 좋아하는지, 여기저기 한창때의 사진으로 젊었던 한 시절을 과시하기 바쁘다. 작정한 이민이 아니라 유학생 남편 따라와 눌러앉은 이민이라 젊을 적 사진이 수중에 없다. 한국의 친정집 다락 어딘가에 있을 듯하다. 대학 졸업 앨범 사진을 올렸더니 “총기 있네” “똑똑해 보이네” 칭찬이 무성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똑똑하지 않았다. 치열한 중학교 입시를 치르고 들어가서 받은 첫 성적표엔 형편없는 석차가 적혀있었다. 전교 1등을 ..

나의 이야기 2021.09.10

두 가지 뇌물/이정아

[이 아침에] 내가 받은 두 가지 뇌물 ​ 이정아 / 수필가 | [LA중앙일보] 2021/08/11 미주판 20면ㅣ입력 2021/08/10 19:00 단골 반찬가게가 사업을 확장하여 식재료를 파는 마켓을 인수했다. 홈페이지를 업그레이드한다며 이미 고객인 사람도 다시 가입해 달라고 한다. 약간 귀찮아도 새 멤버로 가입을 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사업이 잘 된다는 말이니, 남의 일이어도 얼마나 좋은가? ​오늘, 주문한 식품이 배달되었는데 봉투 안에 시키지도 않은 것이 들어있다. ‘뇌물‘이라고 당당하게 스티커까지 붙은 이것은 오돌오돌하게 무친 맛있는 오이지이다. “이거 받으면 우리 단골 되는 거다”하는 문구가 은근한 협박조다. 홈페이지로 인한 미안함을 귀여운 뇌물로 입막음 하려는게 아닌가? 뇌물이라는 부정적..

나의 이야기 2021.08.11